미스터리하면서도 독보적인 아우라, 배우 유아인이기에 가능했다.

유아인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에서 신흥 종교단체의 수장인 정진수 의장 역을 맡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공허하게 비어 있는 듯한 눈빛, 나긋나긋하고 힘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빠져드는 목소리와 말투까지. 정진수라는 인물은 유아인을 만나 입체적인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세계무대에 내놓으려면 유아인이 제격이지!’ 유아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 시청자 반응이었다. 유아인은 “마치 국가대표가 된 거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고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했다”며 웃었다. ‘지옥’을 배우가 아닌 시청자 입장에서 몰입해서 봤다는 유아인은 “자연스럽게 몰아보다 보니 6부가 끝나더라. 한꺼번에 전회차가 공개되는 드라마는 몰아보게 하는 힘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큰 힘이 있는 작품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옥’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 하루 만에 흥행 순위 1위에 오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를 경험해본 유아인이지만 넷플릭스란 플랫폼을 통한 ‘전세계 1위’는 그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우리 작품이 전세계에 공개될 수 있다는 게 가장 반가웠다. 작품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점점 치열해지는 과정 속에 더 폭넓은 반응과 피드백을 얻으면서 관객들의 느낌을 총체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게 배우로서 고무적이다.”

유아인은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 초대 의장 정진수로 등장한다. 자신만의 강한 신념과 집념을 가진 정진수를 미스터리하게 그려내며 길지 않은 분량에도 작품의 독특한 색을 만들어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정진수 캐릭터에 주안점을 둔 부분에 대해 유아인은 “흔히 생각하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는 동떨어진, 반전을 주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사이비 교주 레퍼런스 영상과 비디오를 접했을 때 나지막하고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을 갖고 있더라. 그런 분들에게서 소스를 따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수는 적은 분량에 비해 극에 에너지와 긴장감을 만들어내야 하는 인물이라 그 수위를 어느정도 가져가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또 다른 인물들과 어떻게 조화롭게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출연 이유엔 연상호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 크게 작용했다. “‘지옥’이 가진 메시지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옥과 천국의 콘셉트는 영원불멸의 트렌디한 소재다. 수도 없이 해석되고 메타포로 표현되었을 지옥이란 걸 연상호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낸다면 어떨까 궁금했다.”

그러면서 연상호 감독에 대해 “한 발은 현실세계에 한 발은 본인이 창조한 세계에 놓고 두 세계를 끊임없이 조율하면서, 황당무계한 세계지만 충분히 누구나 공감할만한 판타지를 펼쳐보이는 게 ‘연니버스’의 매력이자 힘이라 생각한다”며 “함께 작업을 하면서 느낀 연 감독님은 유머러스하고 하고 싶은 걸 다 해내는 사람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연약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제가 힘이 세니까 옆에서 도와드리고 싶었다”며 웃었다.

유아인에게 “실제로 정진수처럼 20년 뒤 죽는다는 고지를 받는다면 어떨 거 같냐”고 묻자 유아인은 “20대에는 내일 죽어도 상관없을 거 같은 태도와 에너지로 산 거 같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나를 더 과감하게 던지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과감하게 실험하면서 살아갔다. 한편으로는 느끼한 겉멋과 찌질함에 파묻혀서 살았다. 진수를 보면서 그 시절의 제 치기를 회상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20대에 이어 30대에도 자신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유아인은 “연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털어놨다. 연기 색이 강한 만큼 새로움도 보여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잘한다 잘한다’ 워낙 박수쳐 주셔서 저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어느 순간 부담감이 생겨났다. 저를 둘러싸고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칼날같은 시선도 느껴져서 정신 바짝 차리고 있다.”

오히려 유아인은 변화보다는 영리한 변주를 택했다. 그는 “영화 ‘사도’ ‘베테랑’ 등에서 강렬한 인물을 맡으며 선굵은 캐릭터를 표현해 큰 사랑을 받았지만, 한편으론 그로 인해 저를 그런 프레임에 가두며 제 연기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며 “정진수라는 강한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레벨업’ 버전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제 안에 체화되어 있는 에너지를 통제하고 이를 적절하게 작품에 녹여내는 방법을 시도를 해본 작품이다. ‘지옥’을 통해 배우로서 제 연기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칠 수 있었던 거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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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