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엘리트 복서였다. 부상으로 복싱을 포기했고, 모델로 전향했다. 예술고등학교, 연기학원, 연극영화과 전철을 밟는 다른 배우들과 차이가 있었다. 연기자가 되는 과정에서 안보현은 스스로 이방인이라 여겼다.

노력만이 살길이었다. 먹고 싶은 것, 자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아르바이트와 연기를 병행했다. 악바리 마냥 고된 현실과 맞섰다. 오랜 무명 시절을 거치다 KBS2 ‘태양의 후예’(2016)로 얼굴을 비춘 뒤 JTBC ‘이태원 클라쓰’(2020), 넷플릭스 ‘마이네임’(2021), 티빙 ‘유미의 세포들’(2022)로 점차 입지를 다졌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데뷔한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프라임타임의 메인 타이틀롤을 꿰찼다. 안보현은 지난 23일 종영한 SBS 금토 드라마 ‘재벌 X 형사’에서 주인공 진이수로 현장을 이끌었다.

안보현은 지난 18일 서울시 강남구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SBS 드라마가 ‘사이다’ 요소가 많은데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채널이 가진 고유한 색을 잘 보여주고 싶었고, SBS 히어로 유니버스에 괜찮은 일원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상의탈의? 좋은 거 한 번은 보자고 해서”

‘재벌X형사’는 재벌가 철부지이자 셀럽 진이수(안보현 분)가 강력팀 형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진이수의 행보가 곧 드라마였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차도 여러 대를 끄는 등 온몸으로 플렉스(성공이나 부를 과시한다는 행위)했다. ‘마이네임’에서 인연을 맺은 김바다 작가는 진이수 역에 안보현이 적격이라고 판단해 출연을 제안했다.

“극 중 이수는 발랄한데 저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어요. 고민이 많았죠. 막상 제 연기를 보고 작가님께서 많이 놀랐다고 하셨어요.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대요. 가장 극찬이었죠. 현장에서 애드리브와 아이디어를 많이 받아주셨어요. 생각보다 많이 방송됐더라고요. 효능을 유독 많이 느낀 현장이었어요.”

키 187cm에 넓은 등과 빨래판 같은 복근을 가진 안보현은 대체로 강인한 역할을 맡았다. ‘마이네임’에서도 경찰이었고, ‘태양의 후예’와 tvN ‘군검사 도베르만’(2022)에서는 군인이었다. tvN ‘유미의 세포들’과 ‘이번 생도 잘 부탁해’(2023)에서나 평범한 직장인의 인상이었다.

“작품에서는 덩치가 크게 나와요. 날씬해 보이고 싶어서 유산소 운동만 했어요. 재수없지만 밉지 않은 느낌을 주기 위해 헤어 스타일링도 신경 썼죠. 제작진이 상의 탈의는 꼭 하자고 하셔서, 한 번만 했어요. 좋은 거 한 번은 보여주고 가자고 하셔서요. 그때만 근육을 키우고 계속 뛰기만 했어요.”

◇“점점 두려움 생겨, 더 조심히 살아야 할 듯”

안보현은 신인 시절 영화 ‘히야’(2016)를 촬영할 때 만난 홍승표 촬영감독을 ‘재벌X형사’에서 재회했다. 거의 10년 만이다. 아르바이트와 연기를 병행하면서, 치열하게 살 때 인연을 맺었다. 불안해하는 안보현을 위로해주고 아껴준 인물이다. 오랫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걷다 촬영감독과 주연배우로 만났다. 리딩현장에서 울컥했다고 했다.

“제가 초보였을 때 술도 사주시고 현장 돌아가는 것도 알려주신 분이에요. 중요 스태프들 모임 있을 때 불러주셔서 밥도 사주셨어요. 첫 리딩 현장 때 봤는데 울컥하더라고요. 그분 때문이라도 현장을 더 재밌게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진두지휘한 건 처음이에요. 현장 분위기가 좋으면 작품이 더 좋아진다는 믿음이 있거든요. 모두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어느덧 데뷔 8년 차다. 아무것도 모르는 복서 출신 배우에서 이제는 드라마를 이끄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건실한 청년 이미지를 쌓았다. 호재만 있었던 건 아니다. 월드스타 블랙핑크 지수와 교제가 알려져 만인의 축하를 받았지만 이내 결별했다.

“세월이 가면서 두려움이 생겼어요. 카메라 앞에서든 아니든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요.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계속 채찍질을 하면서 컸거든요. ‘지금 먹을 때야? 쉴 때야?’라면서요. 저는 운이 없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군 제대 후에 조금씩 성장해서 지금까지 올라온 것 같아요. ”

‘재벌X형사’는 최고 시청률 11%(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는 등 호평을 받으며 마무리했다. 시즌2도 계획됐다. 첫 타이틀롤 드라마로는 커다란 성과다.

“목표는 시즌1 스태프 모두와 함께 시즌2를 하는 거예요. 현장 분위기가 좋다 보니까 더 좋은 작품이 나온 거라 자부해요. 제가 스태프 모두에게 같이 하자고 다녀요. 시즌2에서 꼭 다시 만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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