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헌은 다르다. 이름 세 글자만으로 신뢰를 주는 배우는 흔치 않다.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그의 이름이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을 작품 앞으로 끌어모은다. 한, 두 개의 히트작으로 생긴 반짝 인기도 아니다. 1991년 KBS 공채 14기로 데뷔한 이래 이병헌이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는 그의 끊임없는 도전과 변신의 기록이다. 한 장르나 캐릭터에 갇히지도 않았다.
이병헌의 드라마 필모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굵직한 히트작으로 채워져 있다. 1992년 드라마 ‘내일은 사랑’을 통해 청춘 스타로 발돋움한 그는 ‘아스팔트 사나이’ ‘해피투게더’ ‘아름다운 날들’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고, ‘올인’ ‘아이리스’ 등의 대작을 성공시키며 한국 드라마 업계의 규모를 한 단계 확장시켰다.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유진 초이 역으로 안방극장 시청자들을 울리며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K드라마 한류 열풍의 시발점인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는 반전의 핵심 프론트맨 역으로 깜짝 등장해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이끌었다.
이병헌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와 영화를 수시로 넘나들며 결코 한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영화계에서는 1999년 ‘내 마음의 풍금’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다가,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육군 유엔사령부 경비대대 병장 이수혁 역으로 열연해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특히 2001년에는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죽음을 뛰어넘은 운명적 사랑을 애절하게 연기한 데 이어 2005년 ‘달콤한 인생’에서는 냉철한 조직폭력배 역을 맡아 누아르의 아이콘으로 발돋움했다. 이후 2006년에는 다시 멜로작 ‘그해 여름’을 맡아 싱그럽지만 안타까운 순애보를 연기하는 등 이병헌은 작품 흥행 여부에 상관없이 늘 새로운 도전을 추구해왔다.
그야말로 무한 도전이다.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왕과 광대의 1인 2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이병헌만이 가능한 사극 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내부자들’에서는 정치와 권력의 음지를 파고드는 정치 깡패 역으로 이미지 변신에도 성공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이병헌의 뛰어난 활약은 지금의 글로벌 한류 열풍이 불기 전부터 일찌감치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아이.조’에서 스톰 셰도우 역으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이후 ‘레드: 더 레전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매그니피센트7’까지 연이어 출연하며 할리우드 무대에 안착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마스터’ ‘남한산성’ ‘그것만이 내 세상’ ‘남산의 부장들’ ‘콘크리트 유토피아’ ‘승부’ 등 이병헌의 작품 궤적을 보면 데뷔 35년차인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지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이번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벌써부터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극 중 이병헌은 재취업을 준비하는 가장 유만수 역을 통해 관객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연기와 전개를 보여줄 계획이다. roku@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