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전 0-5 참패’ 나흘 뒤에 열린 일전이다. 축구대표팀 ‘홍명보호’는 각성 모드로 파라과이와 겨룬 끝에 승전고를 울렸다. 스리백 요원간의 호흡이 몇 차례 맞지 않아 위기를 자초했으나 골키퍼 김승규의 선방 등을 묶어 승리를 완성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파라과이와 A매치 평가전에서 2-0 승리했다. 지난 1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이달 첫 번째 평가전에서 브라질에 5골을 내주며 무너진 한국은 뒤숭숭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파라과이전 승리를 통해 다시 웃었다.

특히 이 경기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 포트 배정을 앞두고 중대한 일전으로도 꼽혔다.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23위로 포트2 끝자락에 놓인 한국은 에콰도르(24위), 호주(25위) 등의 추격을 받고 있다. 브라질에 크게 져 포트2 사수를 두고 물음표가 매겨졌는데, 파라과이전 승리로 한숨을 돌렸다.

한국은 나흘 전 브라질전과 비교해서 큰 폭의 로테이션을 단행했다. 3-4-2-1 포메이션을 유지한 가운데 최전방의 손흥민(LAFC), 3선의 황인범(페예노르트), 스리백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만 두고 모두 선발진을 바꿨다.

2선에 엄지성(스완지시티)과 이동경(김천)이 배치됐다. 김진규(전북)가 황인범의 중원 파트너로 나섰다. 또 박진섭(전북)이 스리백의 중앙을 지킨 가운데 김민재, 이한범(미트윌란)과 호흡을 맞췄다. 좌우 윙백은 이명재, 김문환(이상 대전)이 나섰다. 골문은 김승규(도쿄)가 지켰다.

포백을 기본으로 한 파라과이도 지난 10일 일본 원정(2-2 무)과 비교해서 골키퍼 포함 5명을 선발진에 새로 넣었다. 디에고 고메스(브라이턴), 오마르 알데레테(선덜랜드), 구스타보 고메즈(파우메이라스) 등 공수 핵심 요원은 일본전에 이어 다시 선발 출전했다.

브라질전에서 상대 뛰어난 개인 전술과 속도, 압박에 물러서는 경향이 짙었던 한국은 파라과이를 상대로 초반 좌우 폭을 넓히며 속도를 실었다. 다만 전반 2분 아찔한 장면이 나왔다. 수비 지역에서 이한범과 김승규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 뒤늦게 김승규가 공을 전방으로 걷어내는 과정에서 파라과이 고메스가 달려들었다. 그의 몸에 맞고 공이 골문을 향했다. 다행히 실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한국은 브라질전에서 더딘 움직임을 보인 황인범이 한결 나은 컨디션을 보였다. 전반 11분 3선에서 몸을 돌린 뒤 상대 측면 뒷공간을 파고든 김문환에게 절묘한 침투 패스를 넣었다. 이어진 김문환의 헤더 패스가 수비에 걸려 유의미한 장면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4분 뒤 기어코 황인범의 발에서 시작해 선제골이 나왔다. 중원에서 정교한 탈압박을 펼친 그는 왼쪽으로 달려든 이명재에게 오른발 아웃사이드 패스했다. 이명재가 골문 가까이 크로스한 공을 파라과이 풀백 주니오르 알론소가 걷어낸다는 게 빗맞아 골문 앞에 떨어졌다. 이 공을 엄지성이 오른발 논스톱 슛으로 연결해 골문을 갈랐다. 그의 A매치 2호 골. 지난 2022년 1월 아이슬란드와 평가전 이후 3년 9개월 여만에 득점에 성공했다.

한국은 파라과이의 반격을 제어, 지속해서 반박자 빠른 전환 패스로 기회를 노렸다. 전반 30분 이동경의 왼발 슛이 골문을 스쳤다.

전반 종반 파라과이는 다시 전방 압박을 통해 기회를 엿봤다. 높은 위치에서 압박에 한국 수비진은 몇 차례 패스 실수를 범했다.

그러다가 전반 43분 ‘빅찬스’를 내줬다. 후방에서 박진섭과 공을 주고받은 이한범이 어설픈 리턴 패스를 보냈다가 로날도 마르티네스(플라텐세)에게 공을 내줬다. 그가 단독드리블해 김승규와 일대일로 맞섰다. 그런데 오른발 슛을 김승규가 선방으로 돌려세웠다. 실점하지 않았지만 어이없는 실수였다.

전반 45분 파라과이 프리킥 땐 수비수 알데레테가 공격에 가담해 위협적인 헤더 슛을 시도했다. 이 역시 김승규가 잡아냈다.

한국은 수비 실수와 더불어 추가골 사냥을 위한 역습 기회에서 김진규 등 공격으로 올라선 이들의 패스 정확도가 떨어졌다. 손흥민이 다시 고립되는 장면도 나왔다.

홍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변화를 줬다. 포메이션은 유지한 가운데 손흥민, 이동경, 이한범을 불러들였다. 오현규(헹크)와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조유민(알 샤르자)을 해당 포지션에 각각 집어 넣었다.

한국은 후반 9분 김문환이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공격에 가담한 조유민을 향해 넣은 공이 김진규를 거쳐 골문 앞 엄지성에게 전달됐다. 그가 재빠르게 오른발 슛했으나 임팩트가 약했다. 골키퍼에게 잡혔다.

4분 뒤엔 파라과이 수비진의 빌드업 실수를 틈 타 김진규가 전방으로 넣어준 공을 오현규가 따냈다. 그러나 반템포 빠르게 오른발 슛한 게 골문을 벗어났다.

후반 16분엔 황인범이 중원에서 절묘한 볼 제어에 이어 왼발 중거리 슛을 때렸는데, 또다시 골문 밖으로 물러났다.

홍 감독은 후반 21분 엄지성, 황인범을 빼고 이재성(마인츠), 원두재(코르파칸)를 각각 투입하며 2선에 힘을 줬다.

그러나 파라과이가 오히려 교체 자원을 통해 후반 중반 이후 매섭게 한국을 몰아붙였다. 후반 25분 프리킥 기회에서 한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 때 교체로 들어온 디에고 곤살레스가 절묘하게 왼발로 감아 찼다. 공이 한국 왼쪽 골대 맞고 흘렀다. 이때 또다른 교체 자원 안토니오 사나브리아가 리바운드 헤더 슛으로 연결했는데 골문 위로 떴다. 한국으로서는 실점과 다름 없는 장면이다.

위기를 넘긴 한국은 다시 경기 리듬을 정비하며 파라과이 공략에 나섰다. 흐름을 바꾼 건 이강인이다. 후반 30분 중원에서 공을 잡은 뒤 특유의 개인 전술로 파라과이 수비 견제를 따돌린 그는 수비 뒷공간을 파고든 오현규에게 절묘한 침투 패스를 넣었다. 오현규는 전진 드리블한 뒤 골문 앞으로 튀어나온 골키퍼를 제친 뒤 왼발로 밀어넣었다.

두 골 차로 달아난 한국은 이강인이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지속해서 파라과이 수비를 짓밟았다. 자칫 파라과이쪽으로 넘어갈 분위기를 돌려세우는 데 이바지했다.

결국 한국은 막판 이명재 대신 이태석까지 투입되는 등 수비진을 보강한 끝에 두 골 차 리드를 끝까지 지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