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속 섹시하고 마른, 백인 여성 캐릭터는 더 이상 없다.

지난 1일 개봉한 ‘더 배트맨’에서 주인공 배트맨의 조력자 ‘캣우먼’역은 흑인 배우 조 크라비츠였다. 전통적으로 배트맨 시리즈의 캣우먼 역은 백인 여성이자 당대 최고의 섹시 스타들이 맡았다. 하지만 ‘더 배트맨’ 속 캣우먼은 약간 다르다. 크라비츠가 주는 매력적인 외형은 기존 캣우먼들과 같았으나 그는 쇼트 커트 머리에 성적 매력 어필보다는 인간 셀리나(캣우먼의 작중 이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크라비츠는 지난달 열린 한국 언론과의 기자간담회에서 “강력한 여성 캐릭터를 표현하는 동시에 연약한 면도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하려 했다. 셀리나는 아직 완벽한 캣우먼은 아니고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싸워 가는 인간적인 인물이다. 다양한 트라우마를 겪고 많은 고통과 분노를 가진 인물로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 가디언지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캐스팅 비화도 털어놓았다. 크라비츠가 2011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 오디션에 지원했을 때 흑인이라는 이유로 오디션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그가 이번 영화인 ‘더 배트맨’에 캐스팅 됐을 때 “정말 끝내주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마블 스튜디오는 오는 6월, 첫 10대 무슬림 여성 히어로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를 출시한다.

15일(현지시간) 마블 스튜디오는 “미즈 마블(Ms. Marvel)을 6월 8일 스트리밍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즈 마블’의 주인공은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10대 소녀로 설정됐다. 게다가 마르고 섹시한 청춘 스타와는 거리가 멀어 다양한 여성 히어로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블의 의지를 단번에 볼 수 있다.

‘미즈 마블’은 2013년 마블 코믹스의 동명 만화책 ‘미즈 마블’로 처음 탄생했으며, 마블 스튜디오가 이번에 실사 드라마로 제작하면서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을 눈앞에 뒀다. 이 드라마는 디즈니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디즈니+’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지난 11일 ‘디즈니+’에서 출시된 한 애니메이션 영화의 캐릭터 설정은 감동마저 자아낸다. 디즈니와 픽사가 협업해 만든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Turning Red)은 흥분하면 거대한 너구리 판다로 변하는 13살 소녀 ‘메이’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메이는 동그란 얼굴에 두꺼운 발목을 지닌 통통한 체형의 동양인이다. 이 영화의 제작 비하인드를 담은 다큐멘터리 ‘판다를 안아줘’에서 제작 디자이너로 참여한 로나 류는 “내 신체의 이러한 부분들을 나는 왜 여태껏 싫어했나 싶다”며 사춘기 소녀의 보편적인 외형을 보여준 캐릭터 메이의 탄생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이 영화에는 패치용 혈당 조절용 인슐린 펌프를 부착한 두 명의 소아 당뇨병 환자가 등장한다. 인슐린 펌프가 표현된 것은 애니메이션에선 최초다. 이를 보고 실제 당뇨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은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며 사화관계망서비스(SNS)에 후기가 올라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팔이 아닌 배에 패치를 붙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당뇨를 앓는 아이들은 친구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학교 화장실에서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고 있다. 현행법상 부작용의 책임 문제 때문에 학교 보건교사가 주사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소아 당뇨 환자는 2만명이 넘는다.

톰 홀랜드 주연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여주인공 MJ 역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젠데이아가 캐스팅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엔칸토’에서도 라틴계와 흑인 가족이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특히 ‘엔칸토’에 나오는 등장인물 안토니오는 뽀글머리의 흑인 소년이었는데 당시 애니메이션을 보던 뽀글머리의 흑인 소년 켄조(2)가 TV 화면에 안토니오가 나오자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됐다. 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 SNS에 올린 켄조의 어머니는 “모든 어린이들이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미디어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건 큰 힘이자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끊임없이 여성 캐릭터 활용법과 인종적·종교적 다양성, 그리고 성 소수자 및 장애인 캐릭터의 등장방식 등에 대해 고민한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이제 한국 상업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을 기대해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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