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신이 되고 용기를 낼 수 있는 기회였다.”

블랙핑크 제니의 배우 데뷔작인 미국 HBO 시리즈 ‘디 아이돌’(The Idol)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최대 케이블방송인 HBO를 통해 공개된 가운데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섰다.

‘디 아이돌’은 떠오르는 팝 아이돌을 둘러싼 모종의 관계들과 음악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팝스타 위켄드가 제작하고 HBO 유명 시리즈 ‘유포리아’의 샘 레빈슨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제니는 극중 주연 배우 릴리 로즈 뎁의 친구이자 댄서 다이앤 역을 맡았다. 제니는 4일 공개된 1회에서 10분 정도 등장해 브라톱과 짧은 핫팬츠를 입고 남성 댄서와 함께 수위 높은 댄스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지난달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연신 혹평 세례를 받은 바 있었다. “추잡한 남성 판타지”(‘버라이어티’), “끔찍하고 잔인하다”(‘롤링스톤’), “강간 판타지”(‘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이 드라마 속 선정성과 여성 혐오적 묘사, 남성주의적 성적 판타지 등을 공통으로 지적했다.

심지어 ‘고문 포르노 같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디 아이돌’로 제니는 생애 처음으로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며 ‘칸의 공주’로 떠올랐지만, 작품을 둘러싼 논란은 피해가지 못했다.

마치 성관계를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와 관능적인 제니의 표정, 몸매를 부각하는 카메라 앵글에 “보기 불편하다”는 시청자들이 속출했다. 특히 블랙핑크 팬들은 제니가 짧고 선정적인 분량에 ‘사용’된데 분노해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에 항의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소속사가 미리 문제를 인지하고 대처했어야 한다는 책임론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해외에선 ‘디 아이돌’의 혹평 세례와는 별개로 연기자 제니를 향한 주목도가 높다. 이들은 주연 릴리 로즈 뎁보다 제니를 향한 반응이 뜨겁다며 짧은 시간 제니가 표현한 강렬한 연기를 극찬했다.

뉴욕타임스는 “누군가에게 ‘디 아이돌’을 보는 유일한 이유는 블랙핑크 제니 때문”이라고 전하며 “첫 번째 에피소드가 방송된 후에는 릴리 로즈 뎁이 연기한 주인공 ‘조슬린’이 아니라 제니가 연기한 ‘다이앤’이 무대의 중심에 섰다. 인터넷 상에는 제니의 연기 데뷔를 칭찬하는 영상이 넘쳐난다”라고 전했다.

포브스는 제니가 ‘디 아이돌’을 통해 배우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며 “기억에 남고, 눈에 띄며, 캐스팅 디렉터와 프로듀서, 관객들의 관심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NBC 또한 “한 시청자는 ‘유일하게 즐거웠던 것은 제니가 춤추는 걸 보는 것이었다’라고 했다”라며 제니의 안무 장면이 유튜브, 틱톡 등에서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제니의 출연 장면은 짧긴 했지만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대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아직 연기력을 평가할 단계는 아니지만, 남성 댄서들과 릴리 로즈 뎁 사이에서 수준 높은 댄스 실력과 노련함으로 단번에 시선을 붙들었다.

제니는 해당 장면에 대해 “댄스 신을 위해 안무를 배울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고맙게도 나는 블랙핑크 활동을 하면서 항상 이 일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왔다”며 블랙핑크 활동이 큰 도움이 됐다고 전한 바 있다.

물론 K팝의 ‘자부심’인 블랙핑크 제니가 남성들의 판타지를 늘어놓은 작품에 쉽게 소비돼 아쉬움을 남기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제니는 위켄드로부터 직접 출연 제안을 받았고, 자신이 맡은 배역과 연기해야 할 장면에 대해 인지한 상태에서 출연을 수락했다.

배우로서 큰 도전을 한 제니는 아마도 팬들이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켜봐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제 시리즈에서 1회가 공개됐을 뿐이다. 1화에서 10분 남짓 분량만 보고 제니의 도전과 의미까지 폄하하는 것이 되레 더 폭력적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제니는 ‘디 아이돌’ 출연 계기를 묻자 “14살부터 아이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과 유사해 공감이 갔다. (연기를 하면) 제 자신이 되고 용기를 낼 수 있는 기회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음악 산업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매료시켰고, 나는 내가 그 역할에 무언가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저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확실히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벽을 부수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한편 관련 논란에 대해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HBO의 전반적인 작품들이 아슬아슬한 수위가 있는 건 사실이다. ‘디 아이돌’ 외에도 수위가 높은 작품들이 많다. 동시에 사회성 짙은 작품을 만들기도 한 만큼 단순히 수위만 높은 건지 그걸 통해 뭔가 담으려는 메시지가 있는 건지는 작품 전체적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라며 “제니 역시 연기에 대한 욕망이 있었고, HBO도 이슈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서로의 목적이 맞아 떨어진 것같다”라고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대중은 드러난 장면만 가지고 평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훨씬 더 부적절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나올 수 있다. 제니가 선정적인 장면에 소비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고, 팬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보기 불편하다고 한다면 그 역시 수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jayee212@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