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위기일까. 한국 영화의 위기일까. 물론 둘 모두다. 외화와 애니메이션의 강세 속에 한국 영화의 위기설은 더욱 단단해졌다. 가뭄의 단비 같은 작품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흥행, 즉 ‘메가 히트’의 탄생이 절실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일별 박스오피스 TOP10 중 한국 영화는 ‘보스’ ‘어쩔수가없다’ ‘세계의 주인’까지 단 세 편이다. 각각 4위, 6위, 9위에 이름을 올렸다. 세 편을 제외한 TOP10엔 일본 애니메이션과 외화, 그리고 재개봉 작품이 자리했다.

시야를 넓혀 올해 박스오피스 TOP10을 살펴봐도 한국 영화의 존재감은 아슬아슬하다. 현재까지 관객수로는 ‘좀비딸’이 누적 563만3768명으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누적 553만260명으로 맹추격 중이다. 무엇보다 ‘귀멸의 칼날’이 개봉 두 달 차에도 꾸준히 일별 TOP10에 자리하고 있어 ‘좀비딸’의 1위 또한 위태롭다.

매출액으로는 역전당한 지 오래다. 매출액 1위인 ‘귀멸의 칼날’은 누적 597억1463만2440원을 기록했다. 뒤를 이어 ‘F1 더 무비’가 549억447만6930원, 그 뒤가 ‘좀비딸’ 530억8581만9890원이다. 관객수로는 ‘좀비딸’이 앞섰으나 ‘귀멸의 칼날’과 ‘F1 더 무비’가 장기 흥행에 더해 특수관 수요, 굿즈 증정에 대한 ‘N차 관람’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애니메이션과 외화가 힘을 발휘하며 한국 영화의 존재감이 위축됐다. 소위 ‘메가 히트작’이 없어 신작 개발이 침체되고, 어렵게 내놓은 작품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올해 거장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신작마저 아쉬운 성과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 한 영화계 관계자 A씨는 “앞선 작품들의 흥행 실패로 제작 시장 자체가 얼어붙었다. 이대로 가다간 신작이 없는 시기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따라 신작 개발은 물론, 신예 발굴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흥행보증수표’는 옛말이다. 신진 감독을 꾸준히 키워야 지금의 ‘거장’ 맥을 이을 수 있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계속해서 거론되는 한국 영화의 위기지만, 고무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여전히 한국 영화는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콘텐츠다. 작품성을 지녔으니, 지금의 위기는 향후 발전을 위한 포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늘 그렇듯 비 온 뒤 땅은 더 굳어지기 마련이다. 한국 영화의 위기설은 매번 제기돼 왔지만 그럼에도 가치를 지난 작품들은 늘 등장했다. 이번 역시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관계자 B씨는 “글로벌 시대의 여러 나라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값진 일이다. 동시에 한국 영화로서 정체성이나 성과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