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아쉽게도 무관에 그쳤다. 평단의 지지를 열렬히 받은 덕에 수상이 점쳐졌지만, 결과는 빈손이었다.

아쉬움이 남은 가운데 박찬욱 감독은 지난 6일(현지시간) 열린 베니스 영화제 폐막식 직후 취재진과 만나 “내가 만든 어떤 영화보다 관객 반응이 좋아서 이미 큰 상을 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대상 격인 황금사자상은 짐 자무쉬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가 받았다. 부모와 성인 자녀 간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 3부작 형식의 장편 영화다.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은 튀니지 감독인 카우더 벤하니아의 ‘힌드 라잡의 목소리’에게 돌아갔다. 지난 2024년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몇 시간 동안 차량에 갇힌 후, 목숨을 잃은 다섯 살 팔레스타인 소녀의 이야기를 응급 구조대의 실제 녹음을 통해 담아낸 영화다.

한국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이후 13년 만이다. 박찬욱 감독은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20년 만에 초청 받았다.

‘어쩔수가없다’는 해고 당한 실직 가장의 재취업 이야기를 박찬욱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전 세계가 고용 불안에 놓여있는 시대, 한국의 해고된 실직 가장 만수(이병헌 분)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이야기다.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했다.

박 감독만의 웃기면서도 슬프고 어느 하나 분명히 택할 수 없는 모호한 상황이 연속으로 일어나며 이야기를 끌었다는 평이다. 박 감독의 견고하고 세심한 연출, 배우들의 호연이 뒷받침되며 평단을 사로잡았다.

박 감독은 지난달 29일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열린 ‘어쩔수가없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많은 사람이 고용 불안정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며 “20년간 이 작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이든 ‘공감 가는 이야기’라고 반응해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쉽지만, 끝난 건 아니다. ‘어쩔수가없다’는 내년 2월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향한다. 로튼토마토 비평가 지수가 100점이었고, 베네치아 언론 시사 이후 7개 매체에서도 100점을 받았다. 베니스 여오하제 비평가 평점은 3.6점, 상당히 높은 점수다.

예술영화와 대중영화의 선을 기막히게 탔다는 평가가 많기도 하고, 워낙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터라 인기 투표에 해당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더 강점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BBC는 “‘어쩔수가없다’은 국제적인 대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스크린 데일리는 “심리적 긴장감과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실업자의 절망과 자본주의 사회의 불필요한 잔혹함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자 경고”라고 평가했다. 인디와이어는 “박찬욱 감독의 탁월하고 잔혹하고 쓸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자본주의 풍자극”이라고 밝혔다.

‘어쩔수가없다’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도 초청받았다. 오는 24일 개봉한 뒤 10월부턴 본격적인 오스카 레이스에 뛰어들 전망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