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확산에 피해 작아…각국 경보체계 신속히 작동
명확한 대피 지침 제공…미국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 핵심 역할
지난 30일 오전 규모 8.8에 달하는 '역대급' 강진이 이른바 '불의 고리'에 속한 러시아 극동 캄차카 반도 인근을 강타했다.
이 지진은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쓰나미를 일으켰고 파도는 일본, 하와이, 미국 서부 해안 등지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지진 규모나 쓰나미 확산 정도에 비해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는 경미한 수준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재난 대응 체계가 성공적으로 작동한 영향이 크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점보제트기 수준인 시속 약 800㎞ 속도로 이동해 일부 지역에 수 분 내에, 태평양 건너편에는 수 시간 내에 도달했다.
캄차카에서는 최대 4m 쓰나미가 관측되면서 해안 지역 일부 건물이 휩쓸렸으나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러시아 당국은 "경보 시스템이 잘 작동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하와이, 미국 서부를 비롯해 캐나다, 칠레, 에콰도르, 뉴질랜드 등 태평양 연안 국가에서도 속속 쓰나미 경보가 울리고 대피령이 내려졌다.
지진 발생과 동시에 조기 경보 시스템이 작동했고 쓰나미 영향권에 있던 각국 주민 300만명 이상은 대피 통보를 받고 안전하게 피신했다.
이 같은 신속한 대응의 중심에는 하와이에 있는 미국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PTWC)가 있었다.
1949년에 설립돼 태평양 전역에 걸쳐 쓰나미를 모니터링해온 PTWC는 이번 강진을 가장 먼저 포착했다.
지진 규모와 깊이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대규모 쓰나미 가능성을 인식해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경보는 각국과 지방 당국으로 신속하게 전파됐다.
이 모든 과정은 정교하게 작동했으며, PTWC의 빠르고 정확한 대응이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또 지진과 쓰나미 영향권에 있던 여러 나라가 명확한 대피 지침과 장소를 제공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하와이에서는 쓰나미 경보 사이렌이 울렸고 주민들은 휴대전화로 알림을 받았다. 모든 섬은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대피소를 개방했다.
일부 해안 지역에는 대피령이 내려졌다. 호놀룰루 당국은 "파괴적인 쓰나미 예상, 즉각 행동 요망"이라며 고지대로 대피를 촉구했다.
다른 지역도 비슷했다. 일본에서는 쓰나미 경보와 주의보에 따라 해안가 주민 등 약 200만명이 고지대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칠레에서는 "나라 역사상 최대 대피 작전"이라고 평가한 대피가 이뤄졌고 140만명이 대피했다.
이 같은 각국의 대응을 두고 일란 켈만 런던대 재난·보건학 교수는 가디언에 "매우 효과적인 대응으로 보인다"며 "사람들이 장기간 교육과 대비 훈련을 받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으며, 이 준비 덕분에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강진 대응에 핵심 역할을 한 PTWC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 삭감 대상에 올라 대응 체계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켈만 교수는 "이번 쓰나미는 PTWC의 필요성을 잘 보여줬다"며 "예산 삭감이 실제로 운영에 영향을 줬다면 그 조치는 철회되어야 하며, 수많은 생명을 구한 이들은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ri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