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질서 앞세워 '민주당 90% 몰표' 워싱턴DC 타깃…마가 결집 포석도
불법이민 척결 이어 범죄 소탕 내걸어…부동산개발업자 본능 분석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도 워싱턴DC에 '범죄 소굴' 이미지를 덧씌우고 대대적인 소탕을 선언한 배경에는 지지층 결집과 민주당 견제라는 다중 포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범죄에 단호히 대응하는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동시에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도시를 표적으로 삼아 야당 인사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치안 업무를 연방 정부가 직접 통제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12일 도심 곳곳에 주 방위군 배치를 개시했다.
도심 한복판인 워싱턴기념탑 인근에서는 군용차량 5대가 한꺼번에 목격됐다. 전세계 관광객이 찾는 워싱턴DC의 명소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수도를 범죄와 유혈 사태, 대소동, 더러움에서 구하는 역사적 행동"이라고 자평하며 "우리의 수도를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조치는 불법 이민자 척결 등 강경 정책을 앞세워 지지층 결집을 꾀해온 트럼프 대통령 전략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국경 강화 등 대대적인 불법 이민자 단속에 나섰다.
지난 6월에는 불법 이민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 로스앤젤레스(LA)에 주 방위군을 투입하기도 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수년 동안 "대도시의 폭력 범죄에 대한 끔찍하고 종종 과장되고 부정확한 묘사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왔다"며 "그 결과 마가 운동은 이 비판을 핵심 신조로 받아들였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에서 민주당이 나약하고 무책임해 사회적 혼란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자신의 '단골' 공격 논리도 그대로 적용했다.
워싱턴 DC는 대표적인 민주당 '텃밭'으로, 지난해 대선에서 유권자 92.3%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현 시장인 뮤리얼 바우저 역시 민주당 소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워싱턴 DC에 관한 조치를 발표하며 민주당 강세 지역인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주), 볼티모어(메릴랜드주), 오클랜드(캘리포니아주), 뉴욕(뉴욕주), 시카고(일리노이주)도 거명했다.
그러면서 "나쁘다, 아주 나쁘다"며 이 도시들의 치안에도 연방정부가 주방위군 투입 등을 통해 직접 개입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바우저 시장은 12일 "우리는 이번 조치가 트럼프 대통령이 도시들에 대해 만드는 서사, 즉 힘을 사용하고 범죄에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을 강화한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다만 민주당으로선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전략에 대한 뾰족한 대응수가 마땅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 범죄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민주당의 비판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지난 3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범죄·폭력에 대해 매우 높은 수준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응답이 47%에 달했다.
미국 의회 전문매체 더힐은 "민주당이 최근 선거에서 취약점이던 법질서 문제를 다뤄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짚었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부동산 개발업자 시절부터 가진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도시의 치안·환경을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이해하는 그의 시각이 이번 조치에 투영됐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11일 워싱턴 DC에 대한 조치와 관련, "이건 부동산 중개업자로서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며 "나는 고치는 것을 매우 잘했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들어보면, 미국의 수도는 수리가 필요한 황폐한 부동산과 같다"고 꼬집었다.
워싱턴DC의 치안 강화에 목소리를 높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작 지지자들의 워싱턴DC 의회의사당 난입 사태 당시에는 침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NYT는 대선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한 2021년 1·6 연방의회 폭동 사태를 거론하며, 이번에 워싱턴 DC에 주 방위군을 보낸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hrse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