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그릇 라면, 평생 못 잊어…편히 쉬길" 눈물 속 마지막 인사
국립서울현충원 안장…"매년 100명 안팎 사망…비극 반복 않길"
육군 일반전초(GOP) 부대에 전입한 지 한 달 만에 간부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김상현 이병이 약 3년 만에 냉동실을 벗어나 영면에 들었다.
스무살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김 이병의 영결식은 30일 오전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사단장(葬)으로 엄수됐다.
진상규명을 위해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차가운 냉동고에 자식을 두고 맨바닥에서 잠을 자며 지내온 김 이병의 유가족은 영결식 내내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
김 이병과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던 동기가 보내온 추도사에서 밀가루를 먹지 못했던 고인이 동기와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라면을 같이 먹었던 이야기와 항상 맡은 일을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해냈던 이야기 등이 영결식장에 울려 퍼졌다.
"작은 한 그릇의 라면 속에 담긴 너의 마음이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큰 선물이었다"는 동기의 편지는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때는 우리 동기들이 말번이라 내 한 몸 추스르기도 너무 힘겨웠어. 그때, 네 곁에서 더 많이 들어주고, 더 많이 안아줬더라면 하는 미안함이 내 마음을 계속 짓누른다. 이제는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편히 쉬었으면 해"라는 마지막 인사에 영결식장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조우제 12사단장은 조사에서 "김 이병을 모든 임무에 헌신을 다한 참 군인이자 주변 사람을 먼저 배려했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청년으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할 것"이라며 영면을 기원했다.
유가족과 함께 진상규명을 외친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사랑하는 자식을 정성으로 키워 나라에 맡긴 유가족에게 말도 안 되는 형벌을 겪게 한 사람이 누구냐"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겠다는 약속에 앞서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지 가슴 아프게 되짚고, 또 되짚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우리 군이 이날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며 "여전히 매년 100명 안팎의 소중한 사람이 군대에서 진다. 부디 이곳 영결식장에 '반복하지 않겠다'는 말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강조했다.
김 이병은 2022년 9월 5일 입대한 뒤 GOP 경계병에 자원해 10월 27일 인제군 12사단 52보병여단 33소초 일반전초(GOP) 부대에 배치됐다.
그곳에서 김 이병은 간부와 선임병들로부터 모욕, 협박, 실수 노트 작성 강요 등 가혹행위를 겪었다. 결국 전입한 지 한 달여 만인 11월 28일 초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사 결과 당시 분대장을 맡았던 간부는 유명 웹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민폐 캐릭터'가 김 이병과 비슷하다며 조롱하듯이 따라 하며 모욕했고, 선임병들은 김 이병이 GOP 근무 내용을 제대로 숙지 못한 점을 질타하며 괴롭힘을 일삼았다.
김 이병을 괴롭힌 것으로 드러난 김모(23)씨와 민모(25)씨, 송모(23)씨는 1심에 이어 지난 24일 춘천지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도 각각 징역 6개월과 징역 4개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 이병은 사망한 지 2년여가 지난 올해 2월에야 순직 인정을 받았다.
군 당국은 김 이병의 유가족 뜻에 따라 군이 경각심을 갖고 군 인권 보호에 힘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고인이 목숨을 끊었던 초소 앞에 추모비를 세웠다.
고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됐다.
(성남=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