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중간선거 민주당 공세 차단 포석…포퓰리스트 성향도 작용"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약값 인하와 초고소득층 증세 등 민주당표 정책으로 기울며 민심 이반 차단에 애를 쓰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2일(현지시간) 있었던 약값 인하 행정명령이다. 비싸기로 악명 높은 미국의 약값이 다른 나라 수준이 될 수 있도록 제약사의 자발적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당국도 규제에 나서는 것이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대한 행정명령 중 하나라고 치켜세웠다. 같은 약이 미국에서는 10배 넘는 가격에 팔린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이 그동안 '호구' 역할을 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약값 인하 정책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호응했다. 샌더스 의원은 다른 나라의 처방약이 너무 싼 게 문제가 아니고 제약사의 탐욕이 문제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동의한다. 미국인이 처방약에 제일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밝혔다.

진보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무소속 샌더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툭하면 '급진 좌파'로 몰아붙이는 대표적 인사다. 최근에는 반(反)트럼프 시위의 선봉에 서서 활약하고 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 보건복지부 장관도 "(약값 인하는) 샌더스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다. 샌더스 팬인 민주당원 젊은이들을 몇 아는데 이런 정책이 시행될 거라고 했더니 눈물을 흘리더라"고 했다.

샌더스 의원과 민주당 내 강성파가 특히 목소리를 높이던 사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앞장서서 추진하는 셈이다. 미국에서 전 국민의 관심사인 약값 인하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외면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제약업체 로비 등에 가로막혀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를 표한 초고소득층 증세안 역시 민주당표 정책을 채택한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1년에 250만 달러(35억원) 이상 버는 개인에 대해 소득세율을 37%에서 39.7%로 올리는 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자감세를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통적 감세 기조와는 결이 다른 행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지지율 하락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미국에서는 관세전쟁으로 촉발된 경기침체 우려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부자감세와 저소득층 건강보험 축소 정책을 집중 공략해 하원을 탈환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이 2기에는 피하고 싶은 운명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화가 근본적인 정책 기조 변화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포퓰리즘적 성향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샌더스 의원의 옛 참모 리즈 팬코티는 FT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것들이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인기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na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