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다시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1천728만여표(49.42%)를,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1천438만표(41.15%)를 각각 얻었다. 두 후보 간 격차는 8.27%포인트다. 승부는 났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반으로 갈렸다. 선거는 민심의 거울이다. 우리 사회가 갈등과 분열의 심연에 놓여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선거가 끝났다고 갈등이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진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진보도, 보수도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4일 취임사에서 '실용적 시장주의'를 내세웠다. "낡은 이념은 박물관에 보내자"고 했다. 그는 또 "진보도, 보수도 없다. 오직 국민의 문제, 대한민국의 문제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경제회복을 위한 '비상경제대응TF'가동과 기업의 창의성·자율성 보장, 문화산업의 육성을 통한 글로벌 도약 구상 등 민생 중심의 국정운영 청사진도 제시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내세운 '국민통합'과 '경제회생'이란 두 기조는 한국이 직면한 핵심 과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선언과 다짐이 아닌 실행력과 지속가능성이다.
▶국민통합, 치유의 정치
독일은 1969년 총선에서 기민·기사당이 242석, 사민당 224석, 자민당 30석을 얻었다. 사민당 소속 빌리 브란트는 예상을 깨고 자민당과의 연정을 성공시켜 판을 뒤엎고 총리가 됐다. 그는 이후 '동방정책'으로 냉전의 벽을 허무는 초석을 다졌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1기 집권기 이후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 '치유의 정치'를 앞세웠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2017년 중도연합을 통해 국민통합을 시도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양극화를 정책과 화합으로 돌파하려 했고, 필요시 권력구조를 조정했다는 것이다.
▶한층 무거워진 리더십 무게
대한민국이 직면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내 경제는 고물가와 저성장이 맞물린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들어섰고, 수출 주도형 경제모델은 미·중 갈등과 공급망 재편 속에서 벽에 부딪혔다. 게다가 한미동맹도 재조정 압박에 놓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고, 주한미군 감축설도 나온다. 향후 국내 정치도 선거 후유증 속에 반목과 불신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경제와 안보, 정치 분야에서 위기가 중첩된 상황에서 국정운영의 키를 쥔 리더십의 무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새 정부 향후 100일이 고비
문제는 이러한 혹독한 도전에 맞서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다. 실용주의는 방법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를 돌파하는 실사구시적 감각과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설득의 리더십이다. 특히 야당과 협치, 지방정부와 연대, 시민사회와 소통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이 불신을 녹이고 공감대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새 정부가 제시한 '실용적 시장주의'가 진정성을 얻으려면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정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새 정부 100일이 고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