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국정과제 수용 촉구 회견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대표자들이 국정과제에 이주노동자 기본권 수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5.7.15 hkmpooh@yna.co.kr
이주노동자 문제를 얘기할 때 스위스 태생의 극작가 막스 프리쉬의 "우리는 노동자를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그들을 노동력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필요만을 충족시키는 노동력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이주노동자도 공동체의 일원이자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많은 한국인이 '이주노동자였던 시절'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1960년대 가난한 조국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낯선 땅 독일로 향했던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있었다. 광부로, 간호사로 가서 이국땅에서 고된 노동자 생활을 했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1963년 12월 21일 광부 123명이 서독으로 처음 출국했다. 그해부터 1977년까지 광부가 7천936명 파견됐고, 간호사는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만1천57명이 독일에서 일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역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일 방문은 잊지 못할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1964년 12월 10일 독일 함보른 광산을 찾아 광부와 간호사들을 격려했는데 당시 영상자료는 이렇게 전한다. "광산밴드가 연주하는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600여명의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은 이곳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함께 깊은 감회에 젖어 눈시울 적셨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된 애국가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목부터는 목메인 소리로 바뀌더니 마지막 구절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에 이르러서는 아예 흐느낌으로 변해버렸다. 박 대통령 내외도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