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공급망 취약한데…中희토류 통제 확대에 "협의하자"
네덜란드 '넥스페리아 경영권 개입' 美입김 의혹…유럽車 비상
유럽이 미국과 중국 간 경쟁 격화로 불똥을 맞고 있다. 대응 방향을 고심하고 있지만, 묘안은 없는 분위기다.
2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27개국 정상회의장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됐다.
중국은 애초 이날 회의 정식 의제는 아니었지만, '경쟁력' 의제 논의 과정에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확대에 대한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회의에서 '중국의 수출 통제 조치가 EU가 아닌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EU가 현실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중국은 지난 9일 희토류에 대한 추가 수출 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예상되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미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한 조처로 해석됐다.
그러나 EU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탓에 산업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인 셈이다.
현재 진행형인 넥스페리아 분쟁 역시 미·중 갈등에 유럽이 휘말린 측면이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이번 사태는 네덜란드 정부가 지난달 30일 1952년 제정된 '상품 가용성 법'(Goods Availability Act)을 첫 발동, 넥스페리아 모회사인 중국 윙테크의 지배권을 박탈하는 비상조치를 내리면서 불거졌다.
네덜란드는 "넥스페리아 내 심각한 거버넌스상 결점들과 행위"를 전례 없는 조치의 이유로 들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넥스페리아의 중국인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라고 네덜란드를 압박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이번 조치가 트럼프 행정부가 윙테크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넥스페리아로 확대한 지 하루 만에 '기다렸듯' 이뤄진 것을 두고도 여러 말이 나온다.
중국은 네덜란드 정부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넥스페리아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넥스페리아는 폴크스바겐,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주요 완성차 업체의 핵심 부품에 필수적인 범용 반도체를 공급하는 회사로, 칩의 약 80%가 중국 내에서 생산돼 공급 대란 우려가 제기된다.
EU는 일단 중국과 대화를 시도한다는 방침이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21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화상통화에서 '긴급 해결책'을 모색하자며 그를 브뤼셀로 초청했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우리는 무역 긴장을 고조하는 데 흥미가 없지만 이 상황은 양자 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신속한 해결책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EU가 미국과 궤를 맞춰 한층 강경한 대(對)중국 통상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이 꾸준히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ACI는 EU와 그 회원국에 대해 제3국이 통상 위협을 가한다고 판단되면 서비스, 외국인 직접 투자, 금융시장, 공공조달, 지식재산권의 무역 관련 측면 등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조치다.
제정 이후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정상회의에서 ACI 발동을 비롯해 모든 수단을 검토해 중국의 희토류 수출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다만 공급망이 취약하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탓에 중국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신중론도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넥스페리아 사태 등과 관련, "상호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며 긴장 고조를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