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희토류 수출통제에 美 대중관세 100% 추가 위협 상황서 한국서 대좌
양국간 쟁점 한번에 해소 여부 주목…급한 불만 끄는 미봉 합의 가능성도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전 세계로부터 가장 주목을 받는 이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중 정상회담이다.
세계 최강대국 지위를 굳건히 유지하려는 미국과, 미국의 견제를 뚫고 1차적으로 역내 패권국, 더 나아가 글로벌 패권국으로 굴기를 꿈꾸는 중국의 정상이 무역·관세를 둘러싸고 다시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다.
양국의 갈등은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의 경제와 안보의 향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그간의 갈등 요인을 털어낼 '세기의 담판'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미중 간 대립각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눈에 띄게 커졌다.
대중(對中) 무역적자 해소와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유입 차단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초강경 관세 정책에, 그간 경제력과 군사력을 발전시키며 덩치를 키운 중국이 보복관세 부과 등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맞섰기 때문이다.
양국 갈등은 한때 서로를 향해 100% 넘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아예 무역 단절 수준으로 치달았지만, 고위급이 수차례 만나 일시 '휴전'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 들자 미국이 '11월 1일부터 추가 100% 관세 위협' 등으로 맞불을 놓으며 다시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미중 정상이 대면 회담을 하는 것은 11개월여만이 된다. 작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전임자인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과 시 주석이 페루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대좌는 트럼프 집권 2기 들어 처음이며,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에 만난 이후 6년 4개월여 만이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는 행사여서 공식 회담이 아닌 약식 회담(pull-aside meeting)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최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밝혔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상당히 긴 회담이 예정돼 있다"며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임을 예고했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지점은 양국이 글로벌 경제 및 안보의 향배에 심대한 악영향을 초래할 '출혈 경쟁'을 해소할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회동 결과물을 매우 긍정적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지난 22일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우리는 함께 많은 문제와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며 "따라서 우리는 이를 기대하고 있다. 뭔가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으로 인한 미국 농가의 타격부터 우크라이나전쟁의 중요 요소인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문제, 나아가 핵 군축까지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낙관론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자신감의 근거로 '관세'를 꼽았다. "관세가 희토류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면서 중국의 희토류 대응 카드를 과소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는 중국도 미국의 공세를 버텨낼 탄탄한 근육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에 허를 찔린 채 끌려다닌 트럼프 1기 무역전쟁 때와는 달리 수년 동안 준비해온 희토류 수출 통제나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 등으로 트럼프를 상대로 역공을 펼쳤기 때문이다.
전체 수출에서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트럼프 1기' 시절이던 2018년 19.3%였으나 올해는 10% 아래로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역 다변화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미중 무역 갈등 상황에서도 동남아시아·아프리카·인도 등을 향한 수출이 늘었고, 지난달 중국 전체 수출·수입 실적은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관영매체들은 중국 상무부가 올해 여러 차례 내놓은 "싸우려면 끝까지 싸울 것이고(打, 奉陪到底) 대화하려면 대문은 활짝 열려있다(談, 大門敞開)"는 입장을 두고 표현 순서가 '대화→싸움'에서 '싸움→대화'로 바뀌었다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대등한 위치에서 미국을 상대할 자신감이 생겼다는 취지다.
하지만, 양국 모두 상대에게 약점을 노출한터라 끝이 보이지 않는 '치킨 게임'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관세 정책 시행 과정에서 대중 강경 발언 후 완화적 제스처를 취하는 패턴이 수차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월가에서는 '타코(TACO·트럼프는 항상 꽁무니를 뺀다)'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강경 발언 시점을 투자자들이 저가 매수 기회로 삼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빈번한 '후퇴'는 미국이 아직 중국의 최대 무기인 희토류의 대체 수입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의 반증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추수감사절(11월 27일)과 크리스마스를 낀 연말 연휴 등 미국의 대표적 소비 시즌을 앞두고 중국과 초고율 관세 전쟁이 재발할 경우 자국 소비시장에 미칠 피해를 우려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집권 2기 취임 이후 호조세를 이어온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나아가 내년 중간선거까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을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셈이다.
미국 헌법상 3선 도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년 중간선거 패배는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 역시 경제에 불안 요인이 상당해 미국의 압박을 버텨내기 쉽지 않다.
우선 관세뿐 아니라 반도체나 핵심 소프트웨어 관련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가 강화되면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분석이 많다.
또한 중국 당국이 발표하는 공식 경제성장률은 올해 3분기까지도 목표치인 '5% 안팎' 수준을 유지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심각해진 부동산 둔화와 내수 침체, 이들과 맞물린 지방정부 부채 문제는 갖은 대책에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을 집계 대상에서 빼고도 청년 실업률이 20%에 육박한 상황이고, 전기차나 태양광 같은 당국이 전략 육성한 산업에선 기업들의 저가 경쟁으로 수익성이 떨어진 상황이다.
경제 버팀목이라 할 만한 수출은 미중 무역 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이 역시 당국의 수출 기업 지원과 환율 하락, 수출 가격 인하에 힘입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미 싱크탱크 랜드연구소 중국연구센터의 제럴드 디피포 선임 연구원은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관측이 사실에 부합한다면, 오는 2027년 당대회에서 4연임 여부가 결정될 시 주석에게도 미국과 무역전쟁 '장기전'은 달갑지 않은 선택지인 셈이다.
물론, 이번 회담이 오랫동안 갈등으로 점철돼온 미중 관계를 재정립하고 첨예한 이해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세기의 담판'으로 이어지기보다 당장 시급한 대립 요인만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잠정적 타협'의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두 정상이 전략 물자나 대만, 펜타닐 등 양국 간의 쟁점을 두루 테이블에 올린 뒤 각자 자국에 성과로 내세울 만한 결과를 챙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에 시 주석의 초청에 따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공언해온 만큼 미중 간 초대형 담판은 그때까지 미룰 수도 있다는 예상도 있다.
(워싱턴 베이징=연합뉴스) 박성민 정성조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