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의 世上萬事

치과의

  • '워싱턴 닷컴(DC) 만세!'

    미국이 독립하고 얼마 안 되어서 나라이름을 무엇으로 해야 할까 하는 문제가 생겼다. 한 의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먼 동방의 나라 조선에 가면 세종대왕이라는 분이 글을 만드는 데 천재라고 하니 자문을 구해 보자고 했다. 사절을 만난 세종은 '아무렇게나 해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메리카'가 되었다. 미국 윗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아쉽다하고 사신을 보냈더니 대왕께서 이르시길 '너흰 가나다순으로 해라'하시거늘 '카나다'가 됐다는 얘기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우스갯소리지만 미국만이 아메리카는 아니다. 멕시코에 가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 당연히 아메리칸 이라고 한다. 북미, 중미, 남미, 모두 아메리칸 임엔 틀림이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아메리카라고도 하지만 엄밀히 US아메리카임을 모두 안다. 그러니 모든 아메리카 대륙인들의 기분이 몹시 언짢을 터다. 그럼에도 미국은 마치 자신들만의 점유물인양 아메리카라고 한다. 건국초기에 콜럼비아로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긴 하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결국 남미의 콜롬비아가 생기면서 그 잔여만 남는 결과가 되었다는데. 어쨌거나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아 그 이름 여기저기 자취를 남겼으니 가장 유명한 것이 아무래도 워싱턴 DC가 아니겠는가. DC는 '컬럼비아 자치구'란 뜻인데 그건 장학퀴즈 식 정답이고 사실은 200여 년 후에 IT산업으로 세계를 휘어잡을 Dot Com이 아니었던가 싶다. '워싱턴 닷컴(DC)!' 다른 나라들은 모두 웹주소 뒤에 각자나라이름을 붙이게 하고는 자기네만 깔끔하게 .com으로 처리하고 그 거드름 피는 모습이란 얄밉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하다. 한마디로 미국은 이미 그 오래 전에 세계를 제패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는지 아니면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수도이름 하나는 잘 지었다. 세계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초강국 미국이 마음속 깊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건 역사적 문화적 전설의 고향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신화의 결여. 세계의 모든 나라에는 나름대로의 이러쿵 저러쿵 신화가 있다. 이는 조상전래의 공동유산으로 한 집단을 묶어주는 접착제이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꿰뚫어 연결해주는 고리라 말할 수 있는데 미국은 이러한 신화가 없다. 유구한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미국은 조부들로부터 시작해 오늘까지도 영웅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영토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토착민 부족을 섬멸하는 잔혹한 정복도 개척과 구호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양면성의 틀을 가진다. 그러고 보니 잔혹성(Devil)과 인류애(Christianity)의 두 가지 의미가 바로 DC인 셈이다. 아무튼 이제 세계의 중심에 서있는 미국은 바로 워싱턴DC에서 잔혹한 전쟁(D)과 구호(C)로 모든 나라에 큰 형님 역할에 바쁜 한편 Dot Com 으로도 글로벌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건국조부들의 비전이든 야망은 아직도 진행형인 셈인데… 이제 더 나아가 앞으론 디지털(D)과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통섭(C)의 시대로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워싱턴 Dot Com 만세라고 해야 하나?


  • 가시나무새

    지금부터 100여 년 전 로버트 스트라우드라는 사람이 살인죄로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한 바텐더가 창녀에게 화대를 지불하지 않은 것이 시비가 되어 그를 바텐더를 살해한 것이었다. 그러다 그는 사소한 다툼으로 동료죄수를 칼로 찌른 일을 저질러 형량이 연장되어 있던 중에 또 다시 많은 죄수들이 보는 앞에서 간수를 살해하는 사건으로 사형언도를 받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사형을 앞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여 간신히 윌슨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얻어내어 보석 없는 종신형으로 감형시켰다. 그 대신 그는 평생 독방으로 살아가는 신세가 된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만 지내야하는 정말로 고독한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감옥소 뒤뜰에서 상처입고 비에 떨고 있는 작은 카나리아 새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자기 방으로 데려다 키우며 벗으로 삼는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는 30여 년을 외부와 차단 된 채 감옥소에서 홀로 지내는 동안 300여 마리의 새를 키우면서 새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고 책까지 저술하였는데 학계의 참고 자료가 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새를 키우는데 필요했던 장비들을 이용하여 몰래 술을 주조하는 증류기를 만든 것이 발각되어 악명 높은 고도 알카트라즈로 이송되어 다시 17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그 곳 의무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가 평생을 같이 했던 카나리아는 가금류 중에서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 같다고 하여 인간에게 가장 귀여움을 받아 선호되는 애완용 새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노래를 가장 잘해서 천상까지 감동케 하는 슬픈 사연의 새가 있다. 가시나무 새다. 이 새는 태어나 자신의 둥우리를 떠나는 순간부터 평생을 쉬지 않고 가시나무를 찾아 날아 다닌다. 그리고 그 나무를 발견하면 가장 길고 가장 날카로운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자신의 가슴 깊이 찔러 넣으면서 느끼는 아픔을 노래한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이 순간에는 온 땅이 숨을 죽이고 이 새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이 노래는 마침내 천상에까지 닿으면 창조주도 들으시고 미소를 지으신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전설은 '최상의 것은 가장 큰 고통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인간 가시나무 새도 있다. 아름다운 최고의 목소리를 얻기 위한 희생의 대가로 남성을 포기해야 했던 카스트라토 들이다. 예리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높은 소리와 씩씩하고 강한 면의 남성의 소리 두 가지를 동시에 다 갖는 넓은 음역을 쓰기 위해 변성기가 되기 전 소년 때 거세를 하는 인간 가시나무 새인 셈이다. 한국영화 서편제에서도 한이 서린 좋은 소리를 얻기 위해 약을 먹여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아버지에게서 희생을 통해 최상을 구하기 위해 비정함도 마다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소리만큼이나 더욱 소중한 것이 말이다. 소설 '가시나무 새'에서 신부는 말한다. "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말하기 전에는 우리가 말을 지배하지만 일단 뱉어지면 그 말이 당신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라고.


  • 우주에서 피어난 '백일홍'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언젠가는 시든다는 말이지만 주로 권력의 무상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십일홍을 넘어 피는 꽃이 있다. 백일홍이다. 옛날 어떤 바닷가 마을에는 머리가 셋 달린 이무기가 나타나 이 동네 처녀들을 제물로 바치게 해 잡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해 한 처녀의 차례가 되어 모두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청년 한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이무기를 처치하겠다고 자원하였다. 처녀로 가장하여 기다리던 청년은 이무기가 나타나자 칼로 쳤으나 이무기는 목 하나만 잘린 채 도망갔다. 처녀가 보은의 뜻으로 혼인을 청하자 청년은 여의주를 찾아 나선길이니100일만 기다려 달라고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이무기와 싸워 이기면 흰 깃발을 달고 올 것이고 지면 붉은 깃발을 달고 오겠다고 했다. 그 뒤 처녀는 100일이 되기를 기다리며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수평선 위에 청년이 탄 배가 나타났는데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처녀는 절망한 나머지 자결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은 청년이 다시 이무기와 싸워 그 피가 흰 깃발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다. 그 뒤 처녀의 무덤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는데 처녀의 넋이 꽃이 되어 100일을 피었다 하여 백일홍이라 불렀다 한다. 헌데 이 백일홍 한 송이가 우주 공간에서 피어났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미국 우주비행사들이 최초로 꽃을 피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NASA는 궁극적으로 인류가 더 먼 우주로 진출하는데 대비하기 위해서 우주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우선 일차적으로 키우기 쉬운 상추를 수확하는데 성공한 다음 단계로 화초에 도전했다. 실험팀은 상추와 달리 환경의 변화와 빛의 특성에 매우 민감하고 발육 기간도 훨씬 길어 재배하기에 몹시 까다롭고 어려운 백일홍을 골랐다는데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이제 백일홍이 피었다는 것은 토마토도 재배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무중력 우주에서의 식물 재배에 중대한 전기가 된 것이라 한다. 사철 내내 푸른 것이 소나무 잎이라면 백일 내내 빨갛게 피는 선경의 꽃이라고 찬사를 받는 백일홍은 '자극에 민감한 식물'로도 알려졌다. 해서 '손가락으로 긁으면 간지러운 것을 참지 못하고 움직인다'고 해서 '파양화(?痒花)'라는 별명도 얻었다는데 이처럼 까다롭고 별난 성질의 백일홍이 우주실험의 안성맞춤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지난해 개봉해 많은 인기를 얻은 영화 '마션'(화성인)이 있었다. 화성 탐사 중 고립된 한 우주인을 구하기 위해 펼쳐지는 구출작전을 그린 공상 과학 영화다. 특히 척박한 화성 기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자를 심고, 그 감자가 하얀 꽃을 피우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마션'의 주인공처럼 우주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일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면서 이제 우주에서도 자체 재배한 식물로 자급자족하며 살아갈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아 보인다.


  • '찹 수이' 와 '비빔밥'

    중국인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14억 인구, 만리장성, 하늘을 나르고 장풍을 하는 무협지국? 중국은 모든 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웅장한 스케일 일 테지만 아무래도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건 요리다. 중국인에겐 땅에서는 네발 달린 것이라면 책상 빼고, 하늘을 나는 것 중에선 비행기 빼고 모두 요리감이라 하지 않던가! 그런 중국요리에서 특별한 것은 Wok이다. 깊게 푹 파인 이 Wok에 뭉툭하고 짧고 두툼한 칼로 토막 낸 덩어리들을 던져 넣고는 불을 마술처럼 다스려 야채와 소스들을 넣고 볶아대거나 튀긴다. 그래서 중국요리점을 'Wok'이라 하지만 '챠오 챠오(chow-chow)'라고도 부른다. 볶는다는 뜻이다. 중국요리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각 나라마다 그 지역에 맞게 변화해서 더 이상 중국요리인지 그 나라의 전통요리인지 모를 정도다. 뉴올리언스에는 케이준 중국요리가, 이탈리아에서는 젤라토 요리가, 프랑스에서는 개구리뒷다리 요리가, 브라질에서는 쿵 푸드가 모두 그런 것들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인이 즐겨 찾는 요리 중에는 중국요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상당수다. 찹 수이, 초장군, Egg Foo Yong 등 무수히 많다. 허지만 이런 요리가 미국에서 자리 잡히기까지엔 중국인들의 엄청난 많은 시간의 시련과 노력이 요구되었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이긴 후 골드러시가 이루어지면서 들어 온 중국인들은 당시 미국인들에게 그저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노동자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해서 미국인들은 그들에게도 훌륭한 문명의 발생지 민족답게 요리 또한 천하일품의 진기한 최고급의 화려한 상이 즐비하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거다. 더구나 당시는 반 중국인 감정인 배화사상이 팽배해 있었고 심지어 중국인은 쥐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으니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있었겠나. 그렇게 천대받고 멸시받던 중국인들은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끔 요리를 바꾸는 기술을 개발해 내는데 무던히 주력함으로 서서히 그들의 음식문화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헌데 흥미로운 것은 본래 중국음식을 미국인 입맛에 맞게 변용된 것도 있지만 흔히 알고 있는 것들 중에 아예 중국 본토에서는 맛볼 수 없는 완전 새로 개발된 미국 판 중국요리가 오늘날 미국인들이 손가락으로 꼽는 메뉴 중의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에그롤, 찹 수이, 초장군, 훠춘쿠키 등이 그것이다. 그 중 노동자들의 애환과 함께 제일 먼저 알려진 '찹 수이(Chop Suey)'는 그 기원이 흥미롭다. 몇 가지 유래 중 하나는 뉴욕을 방문한 주미 중국 대사 리홍장을 위한 저녁만찬에 온 미국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즉석에서 이 요리를 개발했는데 대박을 쳤다는 설이다. 사연이야 어쨌든 이일로 미국인들은 중국 음식점을 찾기 시작했고 찹 수이 유행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를 휩쓸었다. 그 후 2차 대전 때에는 군대 급식으로도 들어갈 정도가 되어 더 이상 미국식이네 아니네 따지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여기에 루이 암스트롱의 '수이'노래는 그 인기를 극에 달하게 했다. 그러고 보면 찹 수이가 인기리에 자리 잡히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찹 수이가 여러 남은 음식을 섞어 볶아 만든다는 '잡쇄(雜碎)'라고 하니 여러 민족의 이민으로 이루어진 미국이 서로 섞여가는 데 좀 더 익숙하고 서로 받아들이는데 더 용이하다는 의미가 아닐는지. 그러니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샐러드 보울'이 아니라 '찹 수이 보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앞으로 '비빔밥 보울'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겠는가!


  • 새해 ...그리고 '꿈'

    새해 병신년(丙申年)이 밝았다. 십이 간지의 유래는 중국 하 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4대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서쪽 황하지류에 살던 민족은 천문학이 매우 발달하여 십이지로 연월일시를 기록하였는데 이것이 한대에 이르러 동물과 연관 지어져 오늘날과 같이 되었다한다. 서양력을 보아도 일 년을 12로 나누어 January부터 December까지 이름 지었다. 그리이스 신화에 보면 야누스라는 신이 있다. 라틴어의 야누아리우스(Januarius)에서 온 말로 문(門)을 지키는 신으로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신이었다. 앞과 뒤를 모두 볼 수 있는 모습이 마치 새해를 시작하는 정월이 지나가는 해를 반성하고 새로 다가오는 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과 같아 이 신의 이름을 따서 January라고 붙였다 한다. 헌데 중국 한대에서 생겨난 열두 동물의 시작은 어떻게 되었던 것일까? 아득한 옛날에 하늘의 상제께서 모든 짐승들을 소집하고 정월 초하룻날 세배하러 오라고 하셨다. 1등부터 12등까지 등수를 정해 상을 주고 기념으로 이름을 길이 남겨 주신다고 하셨다. 걸음이 느린 소는 달리기에 자신이 없으므로 남들이 다 잠든 밤인 그믐날 밤에 미리 일찍 출발하였다. 드디어 소는 동이 틀 무렵 상제님 궁전에 제일 먼저 도착했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소의 머리 위에 앉아 왔던 쥐가 얌체같이 뛰어 내려 1등으로 입성을 하게 되고 소는 2등이 되었다. 천리를 쉬지 않고 달린 호랑이는 3등이 되고 도중에 낮잠을 잤던 토끼는 4등이 되었다. 이어 용, 뱀, 등의 순서로 12등까지 정해졌다. 고양이도 참가했었으나 약삭빠른 쥐가 거짓으로 날짜를 가르쳐 주는 바람에 이튿날 도착하여 열두 마리에서 제외되었다. 이 때부터 고양이는 간교한 쥐에 원한을 품고 영원토록 쥐를 잡아먹으려고 쫓아다니는 천적이 되었다 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십이간지로 돌아가며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즐겁고 희망에 찬 새로운 각오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어느 시인의 말대로 '참을성을 가지고 우리들 마음 속 꽃밭에 삼백예순다섯 개의 꿈의 꽃씨를 심으면 매일 새로운 해가 떠오를 때마다 우리들의 새해 꿈은 곱게 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새 아침이 산 너머에서나 달력에서 오는 게 아니고 우리들의 대화와 눈빛 속에서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나라 초목자(草木子)에 보면 열두 동물마다 한가지씩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쥐는 어금니가 없고 소는 윗니가 없고 양은 눈동자가 없는 것 같이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듯 한 가지씩 부족한 동물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와 같이 완전하지 못한 우리 인간도 온전하신 창조주를 닮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면 그 또한 그 분 보시기에 좋지 않을까? 새해를 맞는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지? 아주 소박하고 사소하다 할지라도 나름대로 소중한 꿈들을 세우고 그런 행복한 꿈에 도전해 보면 어떨는지? Happy New Year!


  • 겨울술 마시며 "진달래!"

    이런 말이 있다. 'The spirit is good, but the flesh is weak.'(정신은 강하나 육신이 약하구나). 어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를 보고는 '아하! 술은 좋은데 안주가 시원찮구나!'했다나? 술을 영어권에서는 spirit이라고도 하지만 '정신'이란 뜻도 있다. 헌데 한자문화권에서도 술(酒精)과 정신(精神)에 같은 글자(精)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술을 단순한 음식이라기 보단 우리의 영육과 밀접하게 하나로 본 것 같다. 주선 이태백은 달을 너무 좋아해 달밤에 배를 타고 술을 벗 삼아 시흥(詩興)에 젖어 강물에 비쳐진 달을 잡으려다가 비록 장강에 빠져 죽긴 했어도 술은 그에게 뗄 수 없는 친구이자 삶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나? 우리 선조들은 술도 분위기와 장소에 따라 가려 마시라 했다. 봄 술은 정원에 앉아 은은하게 마시고, 여름엔 높은 정자 같은 곳에 올라 시원하게 마시라했다. 그리고 가을 술은 바다나 강을 멀리 바라보면서 마시고 겨울엔 하얀 눈과 함께 하라 했다. 자연을 벗 삼아 친하되 스승 모시듯 구별을 두고 예를 갖춰 음미하란 뜻일 게다. '물은 신이 만들고 술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 뱃속에 있을 땐 물속에 잠겨 있던 우리가 죽을 땐 술을 같이 묻어 주는가 보다. 중국에서 딸을 낳으면 술을 땅에 묻었다가 시집가는 날 축하주로 쓰고 그 신부가 입으로 씹어 빚은 술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신랑이 죽으면 저승 갈 때 갖고 가게 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명주(冥酒)라 불렀으니 그야말로 부부가 영원히 해로하는 셈이다. 술은 부부뿐만이 아니라 연인 간에도 불가분의 관계다. 해서 예이츠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술 한 잔 마시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라면서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고 읊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술은 수줍거나 어색한 분위기로부터도 자유롭게 해방시켜주는 신비의 힘이 있어서 마시는 이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해 주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술은 근심걱정을 잊는다 해서 '망우물'이라 했듯이 삶에 지친 사람들의 술잔엔 술이 반 눈물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술은 우리의 삶과 함께 해오며 희로애락을 같이 공유해준 불가분의 그림자인 셈이다. 따라서 지우고 싶은 지난날을 잊고 내일을 위한 재충전이나 수줍은 자가 용기를 내어 보는 정도의 술이라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만 그 정도가 지나쳐 폭발하고 용기가 지나쳐 만용이 되면 추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을 어쩌랴. 그러하니 스스로 통제하고 즐길 줄 아는 자유의지를 키우는 것도 하나의 훈련이요 여유라 할지니 더욱 유념하고 조심해야 후회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또 한해가 가는 세모의 끝자락에서 적조했던 친지나 지인들을 만나 오랫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고 회포도 푸는 크고 작은 모임이 자주 생기면서 술자리 기회 또한 많아질 때다. 성숙한 술 문화를 위해 술도 좋고 안주도 좋지만 정신을 잃지 않고 진정한 좋은 그런 시간을 즐기며 후회 없기 위해서 이렇게 외치자. '진달래!'(진실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누드'의 아내

    '누드'하면 뭐니 뭐니 해도 '플레이보이'지(誌)다. 세기의 호색한이라 불리는 휴 헤프너가 성 생활에 대한 '킨제이 보고서'에 깊은 감명을 받고 '18 이상 80세의 남자에게 의미 있는 잡지가 되겠다'는 선언과 함께 1953년에 창간했다. 첫 호 겉표지에 당시 인기 절정의 섹스 심벌이었던 마릴린 먼로의 누드를 실은 후 지난 62년 간 남의 것을 엿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관음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미국을 대표하는 성인잡지로 자리잡아왔다. 그렇지만 플레이보이는 '여성 누드 사진을 싣는 잡지'라는 선입견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한편으론 수준 높은 읽을거리와 콘텐츠를 갖춘 잡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것은 최고 유명 미녀들의 누드만 실은 게 아니라 존 레논이나 마틴 루서 킹 목사,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심지어 지미 카터 전 대통령 같은 유명인사들의 칼럼과 인터뷰, 진보적 사회평론은 물론 철학에서 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읽을거리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차별적인 콘텐츠 덕이다. 나름대로 완전 포르노와 다르게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육체적 성(性)을 들여다보는 것 외에도 내적인 지적 호기심도 제공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누드의 대명사 플레이보이가 이제 더 이상 누드를 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섹시하고 매혹적인 그러나 13세 관람가 수준의 노출만 사용하겠다고 한다. 이는 사람들의 관음증이 옅어져서가 아니라 더 자극적이고 더 많은 것들을 얻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란다. 마우스 클릭 한번이면 사방 천지에 공짜 포르노가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에 상대적으로 싱거워진 잡지를 어느 누가 돈 내가며 사 보려하겠는가? 심지어 몰카 까지 용이한 세상에 말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벗은 것에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벗은 알몸에 대한 엿보기 욕망을 충족하고픈 사람들의 은밀한 관음증은 발가벗은 몸뚱이만큼이나 그 위에 걸친 겉치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명품 치장이 그렇고 돈이 그렇고 지위 등 남이 가진 것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해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보기 보다는 외형과 소유를 한눈에 훑어보고 가늠 하는데 재빠르다. 그러니 겉치레에 외모 지상주의 까지 법석 떠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얘기가 떠오른다. 오랜 결혼 생활로 감정이 무뎌진 탓인지 아내는 따스한 시선 한번은 고사하고 언제나 텔레비전에 코 박고 떨어질 줄 모르는 남편이 얄미웠다. 어느 날 밤 아내는 관심을 좀 끌어 보기위해 예쁘게 꽃분단장을 하고는 남편 앞을 지나가 봤다. 투명인간 보는 듯했다. 이번에는 잠자리 옷을 입고 살포시 실루엣을 남긴 채 지나갔다. 역시 미동도 없다. 약이 바짝 오른 아내는 아예 벌거벗은 채로 더 가까이 지나갔다. 그런데도 반응은 역시 마찬가지. 화가 치민 아내는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었다.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그랬더니 남편께서 하시는 말씀,'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옷은 좀 데려 입지 그랬어!'하더라나? 누군가 우스개로 지어낸 얘기겠지만 아내의 몸에 생긴 세월의 나이테를 구겨진 옷으로밖에 보지 못한 것도 재빠른 겉치레 관음증 탓일 게다. 그렇지만 상대가 다른 이였더라면 걸친 것마저 꿰뚫어 보고 싶은 관음증을 십분 발휘하지 않았을까?


  • 김삿갓의 '욕'

    얼마 전 박 대통령이 여야 대표단과의 5자 회동에서 한 야당인사에게 "예전에 저보고 '그년'이라고 하셨잖아요?"라며 3년 전 들었던 욕설을 언급하며 집고 넘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에서는 뼈있는 농담이었다고 한 반면 다른 측에서는 뒤 끝 있는 행위였다고 비꼬기도 했다. 잘잘못은 차제하고라도 사석도 아닌 공석에서 소위 지도자급들의 언급치곤 어느 쪽이든 적당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이 일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욕이 한국 사회 전반에 상당히 만연돼 있는 듯해서다. 그것도 너무 원색적이어서 더 하다. 정치인은 물론 연예인, 법조인 심지어 종교인들 까지 욕설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 계층이 없다. 게다가 학생들의 말은 욕설이나 비어가 끼지 않고는 대화가 안 될 정도라니 참으로 우려스럽다. 그래도 예전엔 운치가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도둑놈도 대들보위에 있는 군자란 뜻으로 '양상군자(梁上君子)'라 하지 않았다던가? 우리 때 만해도 볼썽사나운 사람이 앞에 있으면 '전자(前者)들은 말이야'했다. 자(者)가 '놈 자(者)'자 이니 '앞에 있는 놈'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나마도 남자한테야 할 수 있다손 쳐도 상대가 여성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웬만한 용기 아니고서는 내뱉기 힘들게다. 표현도 상스럽지만 듣기에도 거북하고 불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일찍이 우리의 천재시인 김삿갓이 일러준 비법이 있으니 말이다. 하루는 그가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 집 아낙네가 설거지물을 밖으로 뿌린다는 것이 하필 김삿갓이 뒤집어썼다. 과객의 행색이 초라해선 지 이 아낙네 사과는 커녕 홱 돌아서 그냥 들어가 버렸것다. 화가 난 김삿갓 욕을 냅다 하긴 해야겠는데 선비 체면에 막말을 할 수는 없고 해서 그냥 '해해'하고 갔더란다. 웃어 넘겼단 말일까? 한이 많아 세상에 욕하고 싶은 일이 많은 우리 삿갓님께서 그럴 리가 있었겠나? '해'는 한문으로 '년(年)'이요 그것이 두 개, 곧 쌍(?)이니 욕도 그런 욕이 없다. 상대방이 알건 모르건 삿갓님은 시원했을 거다. 이렇듯 욕은 품위와 인격에 직결되므로 피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스트레스 해소에도 일조한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욕도 우리의 삶의 일부분인 감정의 발산이기도 하다. 실제 욕을 하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상스러운 욕설과 악담을 퍼붓는다면 본인은 속이 시원할지는 몰라도 당하는 상대방은 아프고 쓰리다. 해서 욕은 파괴적이고 반사회적이라고는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욕쟁이 할머니 욕은 친밀감을 높여주기도 하고 음식을 맛깔나게 돋우는 양념이요, 김삿갓의 욕은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아 우리네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또한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함으로써 사회질서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해학과 기지가 담겨 있는 욕이기 때문이어서 그런 것일 뿐 그렇지 않은 욕은 내뱉은 사람에게 되돌아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원하면 욕하자! 그러나 재치 있고 맛깔나게 하자. 여자한테는 '해해'로 남자한테는 '자자(者者)'로! 이렇게 얘기하면 나도 욕먹으려나? 죄송!


  • 점 하나만 지우면...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남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라는 유행가가 있다. '도로남'노래가사이다. 허나 실상은 '님'에 점하나 붙여 '남'만 만드는 것도 모자라 아예 돌려 찍어 '놈'도 만든다. 어느 시에선가 읊조린 '보고 있어도 그립다'던 그 님도 마음이 뒤틀려지면 남이 되고 나쁜 자식 놈까지 되고 마는 것이다. 눈에 뭔가 씌어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일 때는 얼굴에 있는 마마자국도 모두 다 보조개로 보이지만 미워지기 시작하면 콧구멍도 왜 그리 크게 보이는지 영화 '나바론 요새'의 거대한 대포 구멍 같다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살붙이고 살던 '당신'도 싸움하고 돌아서면 '등신'이 되나보다. 누가 그랬나.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생면부지의 남들끼리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결합하여 한마음 한 뜻으로 살아가는 한 몸이 되니 끊어내지 못해 촌수조차 없는 무촌이란 의미였겠다. 허나 무촌이란 게 무언가 어긋나 한번 등 돌리면 도로 남이 되니 원래의 타인이 되는 것이라는 뜻이었나? 그렇다 해도 도로묵 아니 도로남이면 그나마 낫겠건만 오히려 꿈에서 조차도 보기 싫은 웬수덩어리가 되니 차라리 안 만났을 리만 못한 경우가 되기도 한다. 어째서 그렇게도 그립고 고운님이 점하나 찍어 남이 되어 돌아서고 멍든 상처로 갈라서게 되는가. 그것은 부부가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이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래서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지? 결혼은 판단력 부족으로 하고 이혼은 인내력 부족 때문이며 재혼은 기억력 부족이라고…과연 그럴까? 그러고 보면 소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왜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한다는 것은 '부부가 된 것'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 부부가 되어가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웨딩마치에 따라 퇴장하는 그 순간부터 싸우고 화해하고를 거듭하면서 양보를 배우고 미운 점까지도 예뻐하게 되면서 검은머리가 휜 머리가 되도록 서로 존중하며 닮아 가도록 노력한다는 말일게다. 그러므로 사랑은 나의 것 반과 너의 것 반만을 합하여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것 전부와 네 것 전부를 내놓아 완전한 하나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마치 젓가락 두 개가 있어야 한 짝이 되고 완성을 이루듯이 그리고 서로 협력해야 공동의 목표로 다가 갈 수 있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부부란 뜻이다. 조물주가 아담을 잠재우고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이브를 만들었다는 창조이야기. 그 분은 왜 하필이면 갈비뼈를 사용했을까? 그것은 다리뼈는 밟는 습성이 있고 손뼈는 삿대질을 하기 쉽고 머리뼈는 가르치려 들것이고 턱뼈는 말이 많아 싸움 잘날 없을 것이고 어깨뼈는 거들먹거리기 십상이고 목뼈는 교만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갈비뼈는 가슴에 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며 나란히 동행해 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잠에서 깨어나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다던 아담조차 이브가 바가지 긁으면 "나 아직도 갈비뼈 많이 남았다"고 했다지 아마?


  • "2호실에 곰보 하나, 갈보 하나!"

    디지털 기기가 발달하면서 청소년 네티즌들의 온라인상 언어문화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심각한 한글 파괴라는 우려까지 나온 지 꽤 되었다. 특히 줄임말들이 그렇다. 잘 알다시피 '훈남'이나 '엄친아'등은 이제 아주 표준말인 듯 착각할 정도로 되었다. 그러나 전혀 알 수 없는 단어는 물론 그 단어조합들이 영어 일본어를 막론하고 뒤엉켜있어 외계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예를 들어 '갈비'는 '갈수록 비호감'이란 말이고 '생선'은 '생일선물'의 준말이라 하는데 그래도 이건 애교라도 있고 나은 편이다. 신조어 '핵노잼'은 재미없다는 말이고 '낫닝겐''은 사람이 아닌 듯 능력이 뛰어난 것을 말하는 영어와 일본어의 합성이다. 웬만한 노력 없인 젊은 시대에 발맞추어 가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허지만 어찌 생각해 보면 줄임말은 옛날에도 있었다. 옛적에 학교칠판 한구석은 주번이나 반장이 분필로 여러 알림을 써 놓는 일종의 메모판이기도 했다. 즉 첫 시간 영어로 시작해서 마지막 미술까지 과목의 첫 글자를 세로로 한줄 곱게 써 놓은 '영수물국상화음미'같은 시간표도 있었고, 떠든 아이들의 리스트도 있었다. 헌데 어느 날 대형사고가 터졌다. 누군가가 칠판에 '생과부 교미 사실'이라고 써놓았는데 하필 그날 첫 시간 들어온 교사가 생~과부 여선생님이었다는데 심한 모욕감을 느껴 범인 색출에 수업은 엉망이 되었다. 드디어 잡힌 범인이 교무실로 끌려가 생활지도부로 넘겨지고 난리를 치고 혼쭐을 내어도 여선생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헌데 실상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오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시간표가 공교롭게도 '생물, 과학, 부기, 교련, 미술, 사회, 실과'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응용미술학과를 '응미과'로 줄여 말하듯이 교육미술학과 학생에게 '교미과 전공하세요?'묻는다면 듣기에 거북하지 않겠나? (다행히 실제로 이런 과는 없다.) 한번은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의대 여학생들이 대화를 하는데 이게 영 주위 사람들이 듣기에 거북한 게 아니었는데 정작 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너 생리했니?''아니, 아직 인데.''얘. 나는 이번에 아주 혼났어. 얼마나 양이 많은지.''그랬구나. 나도 곧 시작하려고 하는데 걱정이야.''매번 고역이야...' 듣다못해 옆 신사 분께서 나무라시자 이 학생들 별꼴이란 듯 한번 쳐다보고는 차에서 내려버리더란다. 사실 이들의 대화는 '생리학'시험에 관한 얘기였는데 '학'자를 떼고 주로 병리니 생리니 해부니 하고 줄여서 한 것뿐이었다. 생리학 시험 분량이 많아 무척 고생한다는 얘기였다. 어쨌거나 줄임말은 재미도 있고 편리하겠지만 이렇듯 오해의 소지도 다분한데 젊은 동아리들끼리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형성하여 구세대와 차별을 갖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문득 이런 고전 하나가 떠오른다. 한 식당에 남녀 한 쌍이 들어갔다. 종업원이 와서 무얼 드시겠냐고 주문하니 남자 분께서 곰탕을 시켰다. 보통이요? 곱빼기요? 하고 되물으니 보통으로 해 달라고 했다. 이어 여자분 차례가 되어 갈비탕 보통을 부탁했더니, 이 종업원 주방에 대고 큰소리로 외치더란다. '2호실에 곰보하나, 갈보하나 있어요!' 에그머니나. 음식하나라도 잘못 주문했다간 해괴하게 망가진 체면이 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