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석의 동서남북

수필가, 목사

  • 실패를 초월하는 노력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존 크리시'는 영국 추리작가협회의 창립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세계 문학계에 크게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평생 564권의 책을 집필했고 많은 사람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이 35세에 작가 활동을 시작한 크리시에게는 특이함 점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서 지도를 받지 않고 독학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쓸데없는 걱정

     영국의 한 의과대학에서 웃음에 대해 연구를 하다가 이러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평균 400-500번을 웃는데 장년이 되면 하루에 15-20번으로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잘도 웃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기쁨을 상실한 채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서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 때문이라 합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염려하는 일들 가운데 얼마나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등목어'에게서 배운다

     연목구어(緣木求魚)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바로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분명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맹자의 격언입니다. 가끔 보면 이처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목구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도와 스리랑카, 중국 등 일부 열대 지방에서 서식하고 있는 '등목어'라 이름 하는 물고기는 나무에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 특이한 물고기는 몸의 길이가 25cm 남짓하며 아가미 덮개에 뒤쪽을 향해 뻗은 가시가 있습니다. 양쪽에 하나씩 있는 아가미 덮개를 뻗어 교대로 바닥을 짚고 꼬리로 밀면서 앞으로 걷거나 나무 위를 기어 올라가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머리 양쪽에도 보조 호흡기관이 있는 관계로 물 밖에서도 며칠씩 버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가운데 퍼덕거리다 죽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물 밖의 물고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이러지도 저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물고기에게 있어서 물 밖에 있다는 환경이 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등목어를 통해서 교훈 삼을 수 있습니다.


  • 티니안 섬의 한민족

     남태평양 사이판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쯤 가면 '티니안'이라는 섬이 나옵니다. 서태평양 북 마리아나 제도에 있는 작은 섬으로 인구는 약 3천 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입니다. 이곳의 원주민은 차모로족이며 이들 주민들의 표정을 보면 하나같이 여유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성공하고 싶으면

     존 워너메이커는 1838년 미국 필라델피아 변두리의 가난한 벽돌공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2학년이 전부였는데 가난으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열네 살부터 서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근면하게 일해서 미국 최초로 백화점을 설립한 그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백화점 왕'으로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 세렌디피티의 행운

     세렌디피티의 법칙은 '세렌디프의 세 왕자'라는 우화에서 유래된 이론입니다. 이 우화는 왕자들이 전설의 보물을 찾아 떠나지만 보물은 찾지 못한 채 계속되는 우연으로 지혜와 용기를 얻는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힌트를 얻은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운 좋은 발견의 법칙'이라는 뜻을 담아서 만들었습니다. 그 좋은 예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포스트잇을 들 수 있습니다. 스펜서 실버란 연구원이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려다가 실수로 접착력이 약하고 끈적거리지 않는 접착제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실패한 연구였지만 이를 보던 그의 동료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꽂아 둔 책갈피가 자꾸 떨어져서 불편했는데 이 접착제로 책갈피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접착제로 포스트잇을 만들게 되었고 이 재품은 3M을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운은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해서 심리학자들은 세렌디피티의 법칙을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오는 우연'이라 말합니다.  우리의 삶에 우연이라는 단어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준비하고 힘써서 이루는 것들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갈 때 세렌디피티의 행운이 찾아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에 우연을 가장한 세렌디피티의 행운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단지 준비된 사람에게만 가능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거져 주어지는 것이 있다면 이는 분명 나와 관계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인생에 수고와 노력을 하지 않고 오직 행운을 기대하는 사람은 뜬구름과 같은 인생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운으로 이름 지어진 모든 일에는 그만한 수고와 노력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코로나 시국에 생각한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면서 과거 우리가 누리던 일상이 180도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하며 누리던 수많은 혜택들이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전에는 코로나 사태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고 생활해야 하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 마음껏 즐기고 누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여 우리의 얼굴을 가리고 필요 이상으로 누리던 자유마저 절제하라고 가르칩니다. 바이러스는 순간순간 손을 씻으라 하는데 그간의 삶의 방식까지도 버리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주문합니다. 코로나는 분명 우리에게 수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교와 학원 그리고 편의점 같은 곳을 오가던 아이들과 집안에 들어앉아 한 상에서 밥을 먹고 얼굴을 마주보며 마음을 나누라 말합니다. 지나치게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는 가운데 그들의 박수와 인정받는 일에 익숙했던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국이 한편으로는 고통이 되었지만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으로 살았던 각자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국을 경험하면서 이 시간 이후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얘기해서 겸손한 인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모난 가치관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품는 여유 있는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코로나 시국은 분명 우리에게 이웃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유익을 챙기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던 삶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찾아온 코로나의 재앙은 겸손을 실천할 수 있는 더없이 귀한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고통당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남보다 한발 앞서서

     대만의 왕융칭 (王永慶)은 1917년 타이베이 근교 신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맨손으로 시작하여 대만 최고의 재벌이 된 그는 학업을 포기하고 16세 되던 해에 첫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쌀가게를 하면 굶지는 않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은 쌀가게는 시작부터 다른 가게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운영을 했습니다.


  • 자리를 잘 잡으세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강병화 교수는 1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야생 들풀을 채집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4,500여 종의 씨앗을 모을 수 있었고 혼자의 노력으로 종자은행을 세우는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서 많은 언론으로부터 취재를 받기도 했는데 강병화 교수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 백비의 의미를 생각하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은 호랑이의 가죽처럼 값비싼 물질보다 세상에 남기는 명예를 더 소중히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명예를 얻기 위해서 필요이상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이름은 고사하고 글자 하나 남기지 않은 비석을 통해서 훌륭한 명예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비문에 아무런 글자도 새기지 않은 비석을 가리켜서 '백비 (白碑)'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