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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준철의 ‘시쓰고 중얼중얼’

  • 너의 울음소리는 나와 다르다

    높게 시작해 꺽이듯 올라가다 멈춰 버리는 나와 달리 낮게 시작해서 더욱 깊이 잠겨드는 너 행여 이 슬픔이 깨질까 혹여 누군가에게 묻을까


  • 빈 냉장고

    텅 빈 냉장고는 서늘하다 맥 빠진 성욕처럼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다 말간 눈빛이 텅 빈 자신의 몸 속을 비추고 있다 채워지지 않은 몸은 얼마나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렸을까 기다린다는 것은 밀폐된 냉기 속에 갇혀 미이라처럼 변하지 못하고 있다


  • 하루를 바라보는 하루

    호흡마다 가시가 돗아나고 자고 깨는 일이 죽고 사는 것보다 어렵다 붉은 꽃의 선명한 고통으로 숨도 쉬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표적도 없는 화살들이 비처럼 내리 꽂히고 바람은 날을 세워 베기를 멈추지 않는다 보드라운 일상의 햇살이 사나운 너울이 되어 길을 막는다


  • 새는 목매달지 않는다

    허공은 자유로울까 아무 것도 나를 잡는 것이 없다는 것은 그렇게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렇게 끝없이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멈춰져 있다는 것은  무엇엔가 붙잡혔다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잡지 않고 있는 것일까


  • 놓아주려다 놓치다

    견고하게 냉동 처리된 생선들을 바다에 던져라 가라앉는 생선들 지느러미의 작은 움직임조차 없이 수직으로 심연의 어둠으로 잠영해 들어가는 것들 단단한 봉인인 양 잠기는 것들 부활의 기도는 없음에도 심해로 떨어져 내린다 약속된 깊이를 지나면 봉인이 풀린 것들이 절망처럼 온 길을 따라 세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냉정한 바다에서 버려진 생선들의 멀건 눈알이 네온 불빛에 애써 반짝이며 물 위에서 뻐금거린다


  • 꽃을 청하다                      

    달래다 지친 나는 그대를 어르다 지친 나는 화도 내고 윽박도 지르고 한동안 멀리 떠나기도 하고 깊이 숨어들기도 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답이 안 나오면 물끄러미 바라보고 살며시 귀 기울이기도 합니다


  • 슬픔이 슬프다

    슬픔이 슬프다                   김준철 은연중 낯설음으로 서로거 서로를 지나간다 안보이는 것을 굳이 보려는 사람이 쓴 발표할 곳 없는 시는 그 사람처럼 슬프다


  • 허기를 끌고

    허기를 끌고                                                                                  김준철 


  • 나를 본다 

    나를 본다  구자애 그늘에 기댄 오후 사무실로 뛰어든 토끼 한 마리 막다른 골목이었다기엔 두려움 없는 눈 동굴이라고 숨었다기엔 더더욱 긴장감 없는 두 귀 이미 문명화된 또 다른 포유류 먹이사슬을 끊고 의탁하며 사는 날것의 비애 사육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르는  저, 이데아 토끼


  • 내 어머니의 발가락이 늙었다

    내 어머니의 발가락이 늙었다                                                                 김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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