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체스챔피언 꺾은 '딥블루' 개발자의 고백…알파고 '변칙수'와는 다른 듯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경기 막판 버그가 하나 발생했어요. 그것이 카스파로프가 '딥블루'의 능력치를 오해하고 실수하게 만들었죠."

바둑계의 '인간 대표' 이세돌 9단이 10일 충격의 2연패를 당하면서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보여준 인간 바둑기사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변칙수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내로라하는 정상급 기사들조차 처음에는 실수·악수라고 일축했지만, 결과적으로 승리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 게 아니냐는 재평가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인간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신의 한 수'에 무기력함을 느낀 관전자들 사이에서 AI 위협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AI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바둑 대결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19년 전에도 인류 최고의 고수를 당황케 한 컴퓨터의 '깜짝 수'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주목을 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의 저서 '신호와 소음'(The Signal and the Noise)에는 AI의 우연한 실수로 체스 세계챔피언이 무너진 일화가 그려져 있다.

1997년 5월 러시아 출신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물리친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를 개발한 머리 캠벨은 저자와 인터뷰에서 당시 첫판이 끝날 무렵 딥 블루가 둔 깜짝 수가 실은 버그였다고 고백했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펼쳐진 '딥 블루'의 44번째 수는 AI 프로그램이 디폴트된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완전히 무작위로 놓은 것이었다고 캠벨은 밝혔다.

캠벨은 "97년 초에도 테스트 게임에서 그런 문제가 한 번 나타나 고쳤다고 생각했었다"면서 카스파로프와 첫 대국 다음 날 해당 버그를 다시 바로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버그에 관해 "불행히도 우리가 놓친 하나의 케이스"라고 평가했지만, 실제로는 행운의 묘수가 됐다.

아무런 목적을 읽을 수 없었던 딥 블루의 44번째 수에 대해 고민에 휩싸인 카스파로프는 직관에 어긋나는 그 수가 20수 가량 멀리 내다본 우월한 지능의 결과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딥 블루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압박감에 시달린 나머지 카스파로프는 2차전부터 예상치 못한 실수를 저질러 결국 승리를 내줬다고 이 책은 설명했다.

캠벨은 인터뷰에서 "카스파로프는 그 수가 버그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딥 블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한 알파고의 변칙수들은 최대한 집 차이를 많이 내는 데 집중하는 바둑계의 상식을 넘어 최소 반집만 앞서도 이길 수 있다는 AI의 계산된 전략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평가가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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