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악수 남발하며 승률 50% 이하로 떨어져
승기 잡고 화장실…쎈돌, 알사범 이긴 순간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패색이 드리운 듯했던 이세돌 9단의 흰돌 진영이 희망의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흑돌로 큰 집을 만들어 놓았던 인공지능 알파고가 신도 인간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로 자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3일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이 열린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6층.

'쎈돌' 이세돌 9단이 최신 인공지능 알파고를 순수 인간의 힘으로 무너뜨린 역사적 현장이다.

알파고는 분명 앞서가고 있었다.

이세돌 9단은 70수 삭감에서 실수해 알파고가 큰 진영을 만드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다 제한시간 2시간을 다 써도 좀처럼 수를 찾지 못해 판을 비틀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세돌은 78수로 중앙 흑돌에 끼우는 '신의 한 수'를 발견했다.

알파고는 79수로 늘어 두었으나 정확한 응수가 아니었다.

이후 알파고는 의문수를 남발했다. 85·87·89수로 이세돌 9단에 큰 집을 만들어주고 자신의 집을 깨트리는 모습을 보였다.

알파고를 대신해 돌을 놓는 딥마인드의 아자황 박사가 이런 수를 놓자 이세돌 9단은 황당한 듯 '피식' 웃기도 했다.

현장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 하호정 4단은 "진짜 에러(오류)가 났다. 한국인 누군가가 (알파고에 오류를 일으키러) 간 것"이라며 황당해했다.

함께 해설자로 나선 송태곤 9단도 "이 게 알파고의 '신의 한 수'라 하더라도 너무 이상한 수"라며 의아해했다.

송 9단은 "알파고가 자멸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이 헷갈리게 수순을 비틀기는 했다. 알파고가 일명 '떡수', 이상한 수를 계속 놓는다. 접전 지역이 아닌 다른 곳에 두면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상황은 이세돌 9단에게 유리하다.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밝혔다.

이세돌 9단은 방심하지 않았다. 끝까지 신중한 표정을 유지했다.

역시 알파고는 103수부터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이 또박또박 끝내기를 해나가며 이세돌 9단과의 격차를 좁혀나갔다.

이세돌 9단은 '볼일'을 보고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듯 심판과 알파고 측에 말을 하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이세돌 9단은 마지막 초읽기 1분을 멈춰놓고 안전하게 화장실에 다녀왔다.

송 9단은 "유리하다는 것, 이길 수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프로가 바둑을 이긴다고 생각할 때 마음을 차분하게 하려고 세수하러 갔다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 덕분인지 다시 착석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의 추격을 차단했다. 중간에 아쉬운 수가 나오기도 했지만, 반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침내 알파고가 항복을 선언했다. "알파고는 불계패 개념을 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알파고가 불계패를 인정하는 모습은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알파고는 모니터에 불계패를 선언하는 창을 띄웠다. 아자황은 바둑판 위 돌을 거뒀다. 이세돌 9단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세돌 9단은 이미 1∼3국에서 알파고에 내리 패했다. 3연패로 이번 5번기의 우승을 알파고에 내준 상태였다. 알파고는 완벽한 수 읽기로 '알 10단', '알 사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은 인간의 자존심을 걸고 한 판이라도 이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 승리' 후 미디어 브리핑장에 들어선 이세돌 9단은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abb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