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 등 고려 비공개"…공보규정 시행 두 달 만에 첫 사례
법조계 "왜 하필 이번부터…청와대 사건 은폐한다는 오해" 지적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성도현 기자 = 법무부가 하명수사·선거개입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청와대 및 경찰 관계자들의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법무부는 4일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로서 전문을 제출할 경우 형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사건 관계인의 사생활과 명예 등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공소장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법무부는 임종석(54)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아직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피의자들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 가능성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공소장 전문 대신 공소사실 요지를 담은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법무부가 공개한 요지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이 기소 당시 언론에 밝힌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공소제기 후 공개 범위와 관련해 '피고인, 죄명, 공소사실 요지, 공소제기 일시, 공소제기 방식(구속기소, 불구속기소, 약식명령 청구), 수사경위, 수사상황 등을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법무부는 "앞으로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에 따라 공소장 원문 대신 공소사실 요지 등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피고인과 사건 관계인의 인권과 절차적 권리가 보다 충실히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피고인의 공소사실을 담은 공소장 전문은 통상 법무부에 대한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 절차를 거쳐 공개돼 왔다. 국회법은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정부와 행정기관이 10일 이내에 보고 또는 서류 등을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김태은 부장검사)는 지난달 29일 백원우(54)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황운하(58)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송철호(71) 울산시장 등 13명을 기소했다. 공소장은 이튿날 대검찰청을 거쳐 법무부에 제출했다. 법무부는 엿새 동안 공소장을 국회에 내지 않고 있다가 이날 비공개 방침을 밝혔다.

검찰이 후속 수사에 보안 유지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공소장 제출을 거부한 사례는 있다. 그러나 국회에 공소장을 전달하는 통로였던 법무부에서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이 시행된 이후 2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이 규정을 들어 공소장을 비공개하기로 했다. 추미애 장관 취임 이후에도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인턴확인서 허위발급 사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감찰무마 의혹 사건 등 공소장이 국회를 거쳐 공개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공소장에 청와대 관계자들의 선거개입 정황이 자세히 담긴 탓에 법무부가 공개를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소장 분량은 60쪽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현 정권 관련 사건이어서 법무부도 이해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사건을 불필요하게 은폐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크게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보규정이 이번 사건부터 적용되는 건 누가 봐도 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검찰이 공소장을 직접 국회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공개될 여지는 남아있다. 검찰은 그동안 국회 관련 업무 관행에 따라 법무부를 통해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구에 응해왔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법무부를 통해 제출하는 것"이라며 "반드시 법무부를 거쳐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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