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가난 딛고 연대에 합격 女의대생 ‘가족위해 쏘아올린 희망의 불꽃’

[생·각·뉴·스]

가난 때문에 공부할 수 있는 상황 아냐

높은 성적 가채점표 보고 온가족 엉엉

▣말·말·말
“꿈꿀 형편 아니었기에, 꿈이 없었다”
<가난에 지쳐있을 때>
“너의 재능이, 인생을 바꾸어 줄 것”
<초등학교 담임교사>
“돈은 내가 벌테니 넌 개천의 용돼라”
<대학포기한 언니의 격려>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웃백에 갔다”

끔찍한 가난 때문에 미래에 대한 꿈조차 꾸지 못했던 연세대학교 의대생이 적은 글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본국 언론들에따르면) 지난 10일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오늘 태어나서 처음 아웃백에 갔다"로 시작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5살 때 어머니가 사망했다. 식당 일을 다녀오다가 당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노가다꾼’으로 불리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였다. 언니는 가난한 집안 사정을 고려해 대학 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상고에 진학했다.

어려서부터 가난을 알게 된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친구 집에 놀러가 집 벽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 수 있단 것을, 집에 신선한 과일이 준비돼 있을 수 있단 것을, 집에 미끄럼틀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적었다.

그는 “꿈을 꿀 형편이 아니었기에, 꿈이 없었다”며 “나도 언니처럼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적었다.

초등학교 때 담임 교사가 했던 “너의 재능이, 인생을 바꾸어 줄 것”이란 말을 떠올린 그녀는 열심히 공부해 전교 1~2등 수준으로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그러나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진학 직후 아버지가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더는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나 하나 일을 안 한다면 일 년에 한 번 새해를 맞아 다 같이 모여 먹는 두 마리에 8000원짜리 바싹 마른 전기구이 통닭을 못 먹게 되는 정도의 가난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엄청 울었다.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쉴 때까지 울었다.”

그때 언니가 용기를 줬다.

“돈은 어떻게든 언니가 벌어 올 테니 너는 공부를 계속해 개천에서 용 한 번 제대로 나 보라” 그 덕분에 글쓴이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난해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글쓴이는 국어에서 2점짜리 하나, 지구과학에서 2점짜리 하나만 틀렸다. 높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그 가채점표를 보고 온 가족이 엉엉 울었다. 아버지는 글쓴이에게 “그렇게 가자고 조르던 아웃백 한 번 못 데려다준 못난 아비 밑에서 잘 커 줘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결국 글쓴이는 정시로 연세대 의대에 합격했고 3달가량 동안 과외를 해 밀린 월세 300만원을 갚았다. 나머지 400만원은 반씩 나눠 아버지와 언니에게 줬다.

그리고 이날 아버지가 아웃백을 데려갔고 가족은 다시 한 번 펑펑 운 것이다. 글쓴이는 다짐했다. “우리 아빠, 우리 언니에게 생일이 아니라 새해 첫날이 아니라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먹고 싶으니까 아웃백에 가서 4인 랍스터 세트를 시켜 먹을 수 있는 인생을 선물해 주기로.”

☞이 글이 포스팅되자 12일까지 댓글이 1만 개가량 달리고 공유가 4000회가량 됐다. 대부분 “감동적이다”는 반응이다. 글쓴이에게 좋은 의사가 되어주라는 당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