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상고심…"인간의 권리는 평등한가요?"에 눈물바다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1987년 사건이 만천하에 공개됐지만,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의 호소는 한 지성인의 죽음과 달리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권리는 평등한 것인가요?"

형제복지원 사건 비상 상고심이 열린 15일 오전 11시 대법원 1호 법정. 피해자 측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피해자의 억울함이 비로소 법대 위에 오른 순간이었다.

'특수감금 무죄 판결'로 법정 문이 닫힌 뒤 31년 만이다. 공판에는 이젠 중년을 넘어선 형제복지원 피해자 40여명이 참석했다.

"15분 정도면 되겠냐"라는 대법관의 질문에 박 변호사는 시간을 더 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아픔을 얘기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30년간 고통스러운 기억을 견뎌온 피해자들의 사연이 소개되자 법정은 이내 눈물바다를 이뤘다.

◇ 31년 만에 다시 재판…피해자들 40여명 참석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 수용시설로 운영됐다. 하지만 부랑인이 아닌 시민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무성했다.

복지원 자체 기록에 따르면 12년간 513명이 사망했고 주검 일부는 암매장됐다.

검찰은 1987년 박인근 원장을 업무상 횡령·특수감금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내무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박 변호사는 1987년 형제복지원의 참상이 폭로됐지만,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가려져, 이후에는 부랑인이라는 낙인과 편견에 밀려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피해자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서명운동, 1인 시위, 삭발식, 국토대장정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내버려 둘 건가, 제발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남은 건 트라우마뿐이었다.

◇ '한국판 아우슈비츠'…관심 부족에 진상규명 더뎌

박 변호사는 "지옥 같은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한 피해자의 체념을 전했다. 그는 피해자의 '자위'라고 했지만, 시대의 무관심이 빚어낸 무거운 '고통'으로 해석했다.

피해자 측은 재판부에 "형제복지원 사건의 최선의 해결책을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원장의 특수감금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의 무효 여부도 심판해달라고 했다.

장애인·노약자 보호시설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시설수용과 인간적인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 달라는 당부도 했다.

◇ 대검 "형제복지원 원장 특수감금 무죄 파기해달라"

고경순 대검 공판송무부장은 비상상고 취지를 설명하고 재판부에 "특수감금 무죄에 대한 부분을 파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내무부 훈령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명확성의 원칙을 어겨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훈령이 위법하지 않더라도 이 훈령에 근거한 강제노역 등 인권침해 행위는 보호조치와 무관하다는 논리도 폈다.

고 부장은 "사건을 하나하나 밝혀내지 못한 채 특수감금 등 일부 범죄로만 기소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조사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4월 위헌인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은 불법 감금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사건 재조사를 권고했고 이는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로 이어졌다.

◇ 원심 파기해도 피고인 무죄 판결에는 효력 없어

하지만 비상 상고심은 재심과는 달라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해도 이론적 의미만 있을 뿐 박 원장의 무죄 판결에는 효력을 미칠 수 없다.

비상 상고심 판결로 원심 판결이 피고인에게 불리해졌을 때, 즉 피고인이 구제를 받을 수 있을 때만 다시 재판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비상 상고 판결이 '재판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학설'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이번 재판에서 박 원장의 특수감금 무죄 판결이 유죄 취지로 파기되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명예회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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