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발전소 고장…원전 가동도 연쇄 중단

TSMC 일부 공장 '순간 전압 하락'…"반도체 생산차질 없지만 영향 점검"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3일 대만 전역에서 갑작스러운 정전 사고가 발생해 시민 수백명이 건물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등 큰 불편을 겪고 많은 산업 시설 가동이 중단되면서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작년 5월에 이어 또다시 대규모 정전이 벌어지면서 대만의 고질적인 전력 수급 문제가 다시 한번 불거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노후 발전소 고장 따른 정전으로 전역서 피해 속출

대만 중앙통신사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현시시간)께 타이베이(臺北), 신주(新竹), 신베이(新北) 등 수도권을 포함한 대만 전역에서 갑자기 전기 공급이 끊어졌다.

갑작스러운 대정전으로 타이베이, 가오슝(高雄) 등 대만 전역에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신고가 231건 접수됐다. 오전 11시를 기준으로 188곳에서 총 200여명이 구출된 가운데 소방 당국은 구조를 이어갔다.

정전 사고로 대만 주요 도로의 신호등에도 전기 공급이 끊어지면서 대만 경찰은 주요 교차로마다 인력을 배치해 수신호로 차량 흐름을 통제했다.

다만 대만 교통 당국은 타이베이의 전철과 대만 전역의 고속철은 정상 운영됐다고 밝혔다.

대만전력은 가오슝(高雄)시에 있는 싱다(興達) 발전소의 설비 고장으로 남부 지역인 가오슝시와 타이난(臺南)시 전역에 공급이 완전히 중단됐으며 다른 중·북부 지역에서는 순환식 단전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긴급 수리에 나섰다고 밝혔다.

정전 피해가 심한 가오슝시에서는 가압 시설에 전기가 공급되지 못하면서 높은 지대나 고층 건물에 수돗물 공급이 끊어지기도 했다.

싱다발전소는 석탄을 주로 태워 전력을 생산하는 노후 화력발전소로 대만 전체 전력의 약 7분의 1가량을 생산하는 곳이다. 대만에서는 작년 5월에도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때도 싱다발전소의 송전 설비 이상이 원인이었다.

왕메이화(王美花) 대만 경제부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싱다발전소 사고로 인근 고압 송전 시설이 가동을 멈춰 대만 전체 공급 전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천50만㎾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대정전이 초래됐다면서 대만 전체 1천400만 가구 중 500만 가구가 정전됐다고 밝혔다.

대만전력은 수력발전소 등 다른 가용 발전소를 총가동하면서 정전은 부분적으로 해소되고 있다. 대만전력은 오후 1시 현재 타이베이 등 수도권을 포함한 대만 중북부 지역의 전기 공급이 정상화된 가운데 전체 412만 가구에 전기 공급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대만전력은 오후에 추가로 발표한 공지를 통해 남부 지역 가구는 밤까지 부분적으로 정전이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싱다발전소에서 시작된 정전은 대만의 다른 주요 발전소 가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만 행정원 산하 원자력위원회는 제3원전 2호기가 외부 전원 공급 문제로 가동을 중단했다면서 안전 절차를 따라 가동이 중단돼 원전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 경제 영향도…TSMC 등 반도체 업계 피해 확인 중

이번 정전으로 슈퍼마켓, 식당 등 여러 상업 시설에서도 차질이 빚어지고 산업 시설 가동이 일부 중단되는 등 경제 피해도 나타났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 주력 공장 등 첨단 반도체 업체의 생산 시설이 집중적으로 있는 대만 북부 산업단지인 신주과학공업원구 측은 정전 이후 전력 공급에 이상이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TSMC의 다른 반도체 생산 공장이 있는 남부 타이난(臺南)시에 있는 산업단지인 남부과학공업원구에서는 정전 여파로 순간적으로 전압이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TSMC는 반도체 제품 생산에 차질은 생기지 않았다면서도 어떠한 영향이 있는지 점검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생산 시설은 아주 짧은 순간 전기 공급이 끊어져도 불량품이 급증하는 등 큰 피해를 볼 수 있어 안정적 전기 공급이 매우 중요하다.

대만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여서 대만에서 큰 정전이나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세계 업계가 그 파장을 주시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가 있는 대만은 세계 컴퓨터 칩 공급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어 대만 전력망의 회복력은 최근 수년 동안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며 "몇 시간에 걸친 정전이 세계 공급망을 뒤흔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의 전력 사정은 빠듯한 편이어서 주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연쇄적인 대정전 사태로 이어지는 일이 잦다.

이런 탓에 대만에서는 에너지 수급 구조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도 치열한 편이다.

대만 야당은 대정전이 발생할 때마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이끄는 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전력 수급 불안의 원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왕메이화 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정전 발생 직전 대만의 예비 전력률은 24% 이상으로 적절선인 10% 이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장둔한(張惇涵) 대만 총통부 대변인은 시민에게 사과하고 차이 총통이 신속히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최대한 빨리 전력 공급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규모 정전은 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대만의 안보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벌어졌다.

또한 전날에는 중국의 거센 반발 속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보낸 대표단이 차이 총통을 예방했고 이날 오전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차이 총통을 만났다.

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