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염색하고 '영치물품' 착용…"5년만" 대국민 인사

옛 친박계 집결 '박수 환영'…부친 묘역서 8분간 머물다 대구행

(서울=연합뉴스) 류미나 이동환 기자 = "국민 여러분께 5년 만에 인사드리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오전 카메라 앞에서 입을 열었다. 지난 2017년 3월 31일 새벽 영장심사 후 곧바로 구속 수감된 이후로 박 전 대통령의 육성 발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수감생활 막바지 건강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날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지지자들을 맞이했다.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은 시종일관 밝았다.

트레이드마크인 '올림머리'와 비슷한 형태로 단정히 빗어 올린 헤어스타일에, 옅은 화장도 한 모습이었다. 베이지색 마스크 위로 얼굴은 절반만 보였지만, 환한 표정이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입고 나온 남색 코트는 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부터 공개석상에서 여러차례 포착된 옷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허리가 살짝 들어간 남색 숄 칼라 코트는 중요한 자리가 있을 때마다 등장했다.

2015년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참석차 프랑스로 출국할 때, 2016년 11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환영식 때 모두 같은 코트를 입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2017년에 들어서도 1월 1일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 1월 23일 국립현충원 성묘 때, 3월 12일 파면 뒤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갈 때, 3월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같은 차림이었다.

2017년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될 때도 박 전 대통령은 이 코트를 입고 있었고, 5년이 지난 이날도 박 전 대통령은 같은 차림으로 국민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사전투표 때도 같은 코트를 입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비공개 일정으로 나서면서 사진은 공개된 바 없지만, 목격자들의 후일담으로 박 전 대통령의 남색 코트 착장이 전해졌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해당 코트는 '영치물품' 중 하나였다고 설명한 바 있다.

여권 일각에선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가깝다'는 해석을 내놨지만 박 전 대통령측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날은 코트와 비슷한 남색 정장 바지에, 5∼6㎝ 높이로 보이는 검은색 정장 구두와 검은색 가방까지 모두 갖춘 차림으로 단정한 외관을 보이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사면 전 구치소와 병원을 오갈 때 사진에 포착됐던 흰 머리는 다시 짙게 염색한 모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오전 8시 32분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3번 출입구를 통해 걸어 나왔다. 측근 유 변호사를 포함해 10여 명 안팎의 수행원과 경호 인력이 뒤를 따랐다.

차분한 걸음걸이로 취재진 앞에 선 박 전 대통령은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에 "많이 회복됐다"고 답한 뒤 의료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취재진과 눈을 맞추기도 하며, 담담한 목소리로 발언을 이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약 1분가량 짧은 인사말을 마치고 곧장 도로에 대기 중이던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계획 등을 묻는 추가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입구 우측에 도열해있던 정치권 인사들과 따로 인사를 하거나 눈길을 주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퇴원 현장에는 옛 친박(친박근혜)계 정치권 인사들이 집결했다.

앞서 출소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최경환 전 부총리, 조윤선 전 정무수석을 비롯해 국무총리를 지낸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와 김규현 김희정 김재원 민경욱 백승주 신동철 유기준 유정복 이원종 이정현 조대환 한광옥 함진규 허태열(이상 가나다순) 등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와 여당에서 요직을 맡았던 핵심 인사들이 모습을 보였다.

김영식 윤병세 한민구 등 박근혜정부 출신 전직 관료·장관들도 상당수 자리했다.

현직 의원 중에는 국민의힘 윤상현 박대출 윤두현 윤주경 의원이 눈에 띄었다.

친박계 '좌장'으로 불리는 서청원 전 의원도 참석을 준비했으나 전날 밤 코로나19 확진으로 격리되면서 측근들이 대신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지자 200명이 이른 아침부터 병원 출구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의 퇴원을 기다렸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자 '박근혜' '대통령님'을 연호했고, 정계 인사들은 이들을 바라보며 묵묵히 박수를 보냈다.

박 전 대통령이 차를 타고 떠난 뒤로 일부 지지자들은 정치인들을 향해 "윤석열은 내란범죄자" "배신자, 쓰레기들은 다 모였어" 등 일부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큰 물리적 충돌이나 소란은 없었다.

정무수석을 지낸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병원 마중에 대해 "인간 된 도리"라며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명예회복을 위해서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경환 전 부총리는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라며 답변을 사양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SNS를 통해 "만감이 교차합니다. 긴 옥고, 죄송합니다"라고 적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해 부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은 앞뒤로 경호차와 사이드카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했고,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동작동 현충원까지 27분만에 도착했다. 묘역 밖으로 70∼80여명의 지지자들이 모여 박 전 대통령을 향해 환호를 보냈다.

경례와 짧은 묵념으로 참배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은 약 8분가량 묘역에 머물렀고, 이후 별다른 발언 없이 곧장 승용차를 타고 대구 달성군에 마련된 사저를 향해 떠났다.

minary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