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품 받으러 가던 길에 러군 공격으로 아버지 즉사 목격

아들은 팔·손 총상에 목숨은 건져…"쓰러졌는데도 총격 계속"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러시아군의 집단학살 정황이 드러난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이를 또 한 번 뒷받침하는 10대 소년의 증언이 나왔다.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눈앞에서 아버지를 잃은 유리 네치포렌코(14)는 영국 BBC에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현지시간 3월 17일 오전 11시께, 유리는 아버지 루슬란(49)과 함께 약과 식량을 받고자 구호품을 나눠주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당시 부차는 수도 키이우로 진격하려는 러시아군에 초기 점령된 상태로 전기, 가스, 식수가 끊기고 필수품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부자는 마주친 러시아 군인의 저지에 멈춰서야 했다.

유리는 "우린 곧장 손을 들었다.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고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극은 그 순간 일어났다.

유리는 "그다음 아버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에 총을 맞았다. 심장이 있는 가슴 쪽에 총알 2발을 맞고 쓰러졌다"고 전했다.

동시에 러시아군은 유리의 왼손을 향해서도 총을 쐈다. 유리는 땅에 쓰러져있는 와중에도 군인이 자신의 팔에 다시 총을 쐈다고 했다.

유리는 "러시아 군인이 내 머리를 향해 또 한 번 총을 겨눴지만 총알은 내 후드를 관통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군인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던 루슬란의 머리를 향해 또 한 번 총을 쐈다.

유리는 "난 작게 공황발작을 일으켰고 다친 팔을 내 밑에 두고 누워있었다"며 " 손에서는 피가 났다"고 회상했다.

잠시 뒤 군인이 탱크 뒤로 가는 사이 유리는 일어나서 무작정 뛰었다.

집으로 간 유리는 어머니 알라에게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알라는 유리가 틀렸을 수 있고 다친 남편이 의료 지원이 필요한 상황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라는 "아들이 그들(러시아군)이 나도 죽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가지 말라고 빌었다"고 말했다.

남편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선 알라는 길을 가던 도중 이웃들에게 저지당했다.

알라는 "이웃들이 더는 가지 말라고 막아섰다"며 "러시아군이 통제 하의 영토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했다"고 떠올렸다.

다음 날 아침 알라는 어머니와 함께 흰색 스카프를 두르고 다시 총격 현장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러시아 군인들과 이야기해 간신히 통과했고 결국 루슬란 시신을 수습해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가족들은 루슬란을 집 안 정원에 묻어줬다.

BBC는 유리 가족이 제공한 시신 사진에서 가슴에 있는 총상으로 해당 사연의 진위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알라는 변호사였던 루슬란이 대피소에서 앉아 기다리기보다는 자원해서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유리는 자신과 아버지를 공격한 사람이 분명 러시아 군인이었다고 했다.

러시아군이 통상 입는 짙은 녹색 군복 차림이었고 당시 착용한 방탄조끼에는 러시아어로 '러시아'라고 쓰여있었다는 것이다.

kit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