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저 찾아 진심어린 사과…尹측 "국민통합 위한 노력"

'명예회복' 약속까지…文대통령 상대 신경전과 대조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이동환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구 달성군 사저를 방문해 과거 검찰 수사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박 전 대통령을 의례적으로 찾아 '구원'을 푸는 제스처를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몸담은 보수 진영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으로서 극진히 예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날 오후 박 전 대통령과 50분간 비공개로 만난 뒤 기자들에게 "아무래도 과거가 있지 않나"라며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마음속으로 가진 제 미안한 마음을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과 유영하 변호사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참 면목이 없다"며 "늘 죄송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5년 전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에 이어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박 전 대통령의 중형을 끌어낸 악연을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해소하려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 청산' 칼잡이로 두 전직 대통령을 수감시키는 역사의 비극에 결정적 역할을 한 자신을 반성한 것으로까지 해석되기도 했다.

단순히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토끼'를 결집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의 상징성을 이용했다고 보기에는, 그 이상의 발언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정치권 반응이었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당시 검찰 수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국민 통합을 위한 노력으로 이해해달라"고 강조했다.

앞서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 예방이 성사되기까지 대구·경북(TK) 방문 일정을 일부러 미뤄온 것으로 전해졌다. 현직인 문재인 대통령과 만찬 회동 의제를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인 것과 대조된다.

사면·복권 후 사저로 내려가 칩거해온 박 전 대통령도 윤 당선인의 예방 제안을 비교적 신속히 받아들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한동안 만남을 미룰 것이란 예측과 다른 행보였다.

최근 박 전 대통령이 측근인 유 변호사의 대구시장 경선을 지원하는 등 정치 메시지를 본격화하는 것과 미묘하게 맞물리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윤 당선인을 공개 지지하지 않았으나, 국민의힘 후보의 대선 승리를 통한 정권 교체 필요성에는 십분 공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윤 당선인의 사과에 "담담히 듣고 있었다"는 게 유 변호사의 전언이다.

두 사람은 이날 권 부위원장이 "굉장히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고 밝힐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특히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하고, 그의 업적을 널리 홍보해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시고 근무했던 분들을 찾아뵙고, 당시 어떻게 국정을 이끌었는지도 배우고 있다"며 선친에 대한 존경 표시도 빼놓지 않았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아주 오래전에 만난 사람인 것 같다"고 친근감을 나타내는가 하면, "좋은 대통령으로 남아달라"고 진심 어린 당부를 했다는 게 배석자들의 설명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윤 당선인의 취임식 참석 요청을 즉석에서 흔쾌히 승낙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 건강 상태로는 조금 자신이 없다"면서 "앞으로 시간이 있으니까 노력해서 가능한 한 참석할 수 있도록 한번 해보겠다"고 여지를 뒀다.

두 사람의 구원이 이대로 일단락되는지는 오는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리는 윤 당선인 취임식에 박 전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으로 확인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