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통치 독재자 아들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당선, 선친 하야 후 36년만에 재집권 

[필리핀]

러닝메이트 두테르태 딸도 부통령 당선 
독재 정권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층 몰표
"퇴출 가문의 부활…민주주의 전환 실패"

필리핀을 철권통치한 독재자의 아들인 봉봉 로무알데스 마르코스 주니어(64) 전 상원의원이 차기 대통령에 사실상 당선됐다.

현지 ABS-CBN 방송은 9일 오후 9시32분 현재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이 1754만표를 얻어 경쟁자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831만표)을 크게 앞선 것으로 비공식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개표율이 53.5%인 상황에서 두 후보 득표 격차가 배가 넘게 벌어진 것이어서  마르코스 당선이 확실하다. 필리핀은 7641개 섬으로 이뤄져 당선자가 최종 확정되기까지 수일이 소요될 수 있다고 BBC는 전했다. 

외신들은 마르코스가 당선된다면, 이는 독재자 마르코스 일가의 정치적 부활, 필리핀의 민주주의 전환 실패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마르코스 후보는 독재자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로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장기집권했다. 특히 정권을 잡은 뒤 7년이 지난 1972년부터 1981년까지 계엄령을 선포해 수천명의 반대파를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하면서 독재자로서 악명을 떨쳤다. 이에 시민들이 1986년 '피플 파워'를 일으켜 항거하자 하야한 뒤 하와이로 망명해 3년후 사망했다.

이후 아들 마르코스는 1990년대에 필리핀으로 돌아와 가문의 정치적 고향인 북부 일로코스노르테주에서 주지사와 상원의원에 선출됐다.

부통령 선거는 마르코스와 러닝 메이트를 이룬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 사라(43) 다바오 시장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사라 후보는 2천388만표를 얻어 721만표를 획득한 프란시스 팡길리난 상원의원을 3배가 넘는 차이로 앞서고 있다. 그의 부친인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민간인 6000여명을 살해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 조사를 받고 있는 등 온갖 구설수로 '돈키호테 대통령'으로 불린다.

필리핀 정계는 마르코스의 대선 승리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사라와의 러닝메이트 구성을 꼽고 있다.

마르코스는 사라와 '원팀'을 이루면서 집권당인 PDP라반의 리더이자 현직 대통령인 두테르테의 정치적 영향력과 기반을 토대로 지지층을 넓히는데 성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마르코스 독재 정권 치하에서 자행된 고문과 살해 등 암울한 과거에 대한 기억이 잊혀지고 있는 점도 마르코스 당선 배경 중 하나다.

필리핀국립대 정치학부 교수인 하이메 나발은 "마르코스를 지지하는 30대 이하의 젊은층은 그의 선친 치하에서 부패와 인권탄압을 겪지 않았다"면서 "따라서 이들은 과거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미화되고 왜곡된 이야기에 노출돼왔다"고 분석했다.

마르코스의 대통령 당선으로 필리핀의 독재자 가문이 시민들에 의해 쫓겨난 뒤 36년만에 다시 정권을 잡게 된 셈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필리핀 대통령 선거 
최종 승리자는 중국”

CNN,'탈미친중'행보 예상

CNN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봉봉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현 두테르테 대통령의 친중 행보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했다. 필리핀이 친중국 정책을 펼치면, 남중국해를 무대로 중국과 세력 대력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대(對)중 해상 포위망’에 구멍이 날 수 있다고 CNN은 전했다.
필리핀은 미국의 전통적인 군사 동맹국이자, 중국과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중이다. 하지만 2016년 두테르테 대통령의 취임 이후 ‘탈미친중(脫美親中)’ 행보를 이어왔다. 
부통령에 당선된 두테르테의 딸 사라와 러닝 메이트로 제휴를 맺었기 때문에 현 정부의 친중 정책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