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마련된 빈소에 모인 유족, 뒤늦게 사망 확인하고 큰 충격

(부산=연합뉴스) 김재홍 차근호 손형주 박성제 기자 = "늦게 공부를 시작했는데도 시험에서 항상 좋은 점수를 받아 기특했던 내 동생, 간호사 꿈은 이제 어쩌나."

31일 오전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자 A(28)씨 빈소가 차려진 부산 사상구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A씨 오빠 B씨는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두 살 아래 여동생인 A씨는 부산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며 올해 3월 전남지역 한 대학에 있는 간호학과로 진학했다고 한다.

B씨는 "평소 헌신적인 성격으로, 본인 앞가림은 제대로 못 하면서도 남을 챙겨주느라 항상 바빴다"며 동생의 평소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있으면 집에 있는 빵이나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며 챙기기도 했다"면서 "그런 헌신적인 성향 때문인지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면서도 더 전문성이 있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A씨는 최근 대학 중간고사를 끝낸 뒤 간호조무사 때부터 함께 일하다가 간호사가 되려고 같은 대학 간호학과에 진학한 친구와 이태원에 갔다가 참사 피해자가 됐다.

A씨 친구는 사고 당일 심폐소생술을 받아 의식을 되찾았지만, 병원에 이송돼 치료받다가 끝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마지막으로 동생 얼굴을 본 게 지난 추석이었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가족들 모두 여동생이 서울 이태원에 갔는지도 몰랐고, 이번 참사에 휘말린 줄은 상상도 못 해 충격이 큰 상태"라고 전했다.

A씨는 평소 늦은 나이에 시작한 본인 공부 뒷바라지를 해주는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가족들과 카카오톡 등으로 자주 연락했지만 지난 주말에는 서울에 놀러 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고 다음 날인 30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친이 A씨에게 연락했는데 분실된 A씨 휴대전화를 입수한 경찰이 전화를 받으면서 사고 사실을 알게 됐다.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거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A씨 가족들은 "지난 29일 오후 사고가 났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던 터라 더 죄책감이 크고 미안하다"며 "얼마나 고통스럽게 마지막을 맞았을지 상상이 안 된다"고 오열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A씨 부모는 A씨 시신이 상당히 훼손된 상태로 돌아오자 누군가 일부러 때린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했다.

B씨는 "동생이 내년부터는 먼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간호 실습을 해야 한다며 운전면허도 땄고, 부모님이 사주신 중고차로 운전 연습도 하고 있었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이날 A씨 빈소에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친척들과 친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쉽사리 빈소에 들어서지 못한 채 밖에서 손수건으로 눈물만 닦았다.

비슷한 시간 금정구 영락공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또 다른 이태원 참사 피해자 C(27)씨 빈소 곳곳에서도 유가족들 오열이 터져 나왔다.

C씨는 부산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올해 3월 서울의 한 병원에 취업하면서 상경했다.

빈소를 지키던 삼촌 D씨는 "조카가 이태원 사고 희생자일 줄을 꿈에도 몰랐다"며 "부산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이 밥을 먹을 정도로 친했는데…"라고 울먹였다.

가족들은 당국의 조치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D씨는 "30일 오후 1시쯤에 조카 지인으로부터 조카와 같이 이태원에 있었는데 조카가 행방불명 됐다는 연락을 받고 직접 관할 경찰서에 전화해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며 "사고 이후 반나절이 훌쩍 넘어서도 사망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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