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손 글씨로 경제적 어려움 토로…"새벽부터 밤까지 일해"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최은지 기자 = 최근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또 다른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17일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 12분께 인천시 미추홀구 아파트에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A(31·여)씨를 그의 지인이 발견했다.

A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그의 집에서는 손 글씨로 종이에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쓴 유서가 함께 발견됐다.

조사 결과 A씨는 이른바 '건축왕' B(61·남)씨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였으며 앞서 경찰에 신고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9월 보증금 7천200만원을 주고 아파트 전세 계약을 했고, 2년 뒤 임대인의 요구로 재계약을 하면서 보증금을 9천만원으로 올려줬다.

A씨 집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아파트 준공 시점인 2017년 7월 채권최고액 1억5천730만원으로 근저당권이 이미 설정됐고, 지난해 3월 경매에 넘어가면서 근저당권은 부동산 투자유한회사로 이전됐다.

A씨 집의 경매가 시작된 비슷한 시기 이 아파트 전체 60세대도 통째로 경매에 넘어갔다.

소액임차인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일정 금액의 최우선변제금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2017년 준공된 이 아파트는 전세보증금이 8천만원 이하여야 최우선변제금으로 2천700만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탓에 사망 당시 A씨는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날 A씨 집 현관문 앞에 놓인 쓰레기봉투에는 수도 요금 체납을 알리는 노란색 경고문이 버려져 있었다.

아파트 동대표인 김병렬씨는 "2주 전 엘리베이터에서 A씨를 만났을 때도 '일단 버티고 살자'며 대화를 나눴는데 오전에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피해대책위 관계자는 "A씨는 평소 새벽에 일을 나가 밤늦게 퇴근하는 등 어렵게 생활하던 중에도 피해 구제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으로 안다"며 "전세 사기 피해로 많이 힘들어했다"고 기억했다.

실제로 그는 숨지기 전날까지도 회사에 출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오는 18일 오후 인천 주안역 남측 광장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A씨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추모식도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2월 28일과 지난 14일에도 건축왕 B씨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20∼30대 피해자 2명이 인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구체적인 경위를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축왕 B씨는 공인중개사 등 9명과 함께 지난해 1∼7월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1채의 전세 보증금 125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이번 전세사기 사건으로 이미 기소된 B씨 등 10명 외 나머지 공범 51명도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도 조만간 검찰에 송치될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우선 1차로 10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추가로 공범들을 계속 수사하고 있다"며 "전세사기 혐의 액수는 계속 늘어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