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별세 참전용사의 유언, 룩셈부르크 성당 장례식장서 연주 감동

백마고지 전투 참전 생존 질베르 호펠스씨

각별한 한국 사랑…한국전 참전 회장 활동

생전 인터뷰 "日, 한국에 위안부 사과해야"

 6·25 한국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살아남은 룩셈부르크 참전용사의 장례식에서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룩셈부르크 레미히의 한 성당에서 6·25 전쟁 참전용사인 질베르 호펠스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6·25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비무장지대(DMZ) 백마고지 전투에서 생존한 그는 지난달 24일 현지 병원에서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룩셈부르크 한국전 참전협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히 활동했지만, 고령의 나이에 입·퇴원을 반복하다 결국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생전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남달랐던 고인은 "장례식 때 꼭 아리랑을 불러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리랑은 호펠스씨가 생전 가끔 직접 부르기도 하고 생일 파티 축하곡으로도 사용했을 정도로 좋아했던 곡이다.

호펠스는 1951년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입대한 후 한국전 참전에 자원했다. 군 복무가 끝나갈 즈음이라 부모가 반대했지만 그는 1952년 3월 부산에 도착, 백마고지 전투 등에서 벨기에대대 소속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백마고지 전투는 그해 강원 철원 일대에서 국군 9사단이 중공군과 격돌했던 전투로, 6·25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벨기에대대 일등병이자 기관총 사수로 임무를 수행하던 호펠스는 이 전투에서 살아남아 이듬해 1월 룩셈부르크로 복귀했다. 호펠스가 참전 당시 틈틈이 기록했던 일기는 현재 룩셈부르크 전쟁박물관에 사료로 전시돼 있다.

호펠스 씨는 지난 2019년 한국전쟁유업재단(KWLF)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참전 뒤 20여년 만인 1975년 처음 재방한했을 때를 언급하며 "한국의 달라진 모습에 '낯선 감명'을 받았다"며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 한국에 사과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제대한 뒤 룩셈부르크 세관에서 일한 그는 업무와 무관한 한국 역사에 대한 책도 다수 독하하는 등 평생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놓지 않았다.

한국전 참전한 ‘최소국’
인구대비 참전 ‘최다국’

룩셈부르크는 한국전쟁 파병 당시 인구 20여만 명에 불과했으나 100명(연인원 기준)의 전투 병력을 참전시켰다. 22개 참전국 중 인구대비 최다 파병국으로 기록돼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 남은 생존자는 2명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