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 지나도 무뎌지지 않아"…오월 어머니 사연에 울음바다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18일 5·18 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식이 열린 국립 5·18민주묘지는 올해도 어김 없이 슬픔에 잠겼다.

남편 또는 자식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은 애달픈 사연이 대형 화면에 송출되자 저마다의 기억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가족을 잃고 지낸 세월이 반평생이 가까이 흘렀지만, 그리움과 슬픔은 무뎌지지 않았다.

소복을 입은 백발의 오월 어머니들은 기구한 사연을 간직한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위로했다.

기념식장을 찾은 시민 추모객들도 빗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어머니들의 아픔을 함께했다.

바로 옆에서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윤석열 대통령도 눈을 질끈 감거나 시종일관 애달픈 표정으로 기념식 자리를 지켰다.

기념식에서는 다양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던 그날의 광장처럼 각계의 목소리가 표출되기도 했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촉구 문구가 적힌 소형 펼침막이 객석 군데군데에서 등장했고, 보라색 스카프를 목에 두른 이태원 참사 유가족 20여 명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슬픔과 행동이 공존한 기념식이었지만, 오월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때는 하나가 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별, 나이, 정치색을 구분하지 않고 참가자들은 옆에 앉은 사람과 손을 맞잡으며 하나가 됐다.

불끈 쥔 주먹을 위아래로 흔든 윤 대통령도 오월 어머니들과 한목소리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영령을 추모했다.

윤 대통령은 비옷을 입지 않고 우산을 쓰지 않은 채, 기념식 내내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았다.

50분가량 이어진 기념식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열사 묘역까지 참배한 뒤 자리를 떴다.

대통령 퇴장 후 기념식 참석자들도 열사 묘역으로 이동해 오월 영령을 기렸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묘비 옆 영정사진 속 열사들의 앳된 얼굴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트렸다.

마스크를 벗어 눈물을 닦아낸 한 유족은 "영겁의 세월이 흘러도 아픔은 잊히지 않는다. 43년이 지나도 슬퍼하는 오월 어머니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 같다"고 말했다.

단 한 번의 사죄도 없이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전두환 씨를 대신해 사죄한 손자 전우원 씨도 이틀째 5·18묘지를 찾았다.

기념식에 공식으로 초청받지 못한 그는 민족민주열사 묘역이 조성된 망월동 구묘역을 둘러봤다.

오월 영령과 민주열사를 추모한 전씨는 할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이른바 '전두환 비석'은 밟지 않고 지나쳤다.

참배를 마친 뒤에는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 1호인 전남대학교를 찾기도 했다.

이날 기념식은 여느 해보다 강화된 경호·경비 속에서 치러졌다.

5·18묘지 초입에서는 '오월을 사랑하는 모임', '턴라이트', 민주노총 등 7개 단체의 200여명이 집회를 벌였으나 우려했던 마찰이나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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