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시설입소·입양 가능성…보육시설 등 공적체계 안에도 다수"
서울 한 베이비박스에 8년간 1천418명 들어와…상당수 출생 미신고
'고의 미신고' 가능성도 제기…"출생신고 시스템 아동 중심으로 바꿔야"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김솔 기자 = 지난 22일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유령 아동'이 지난 8년간 2천여 명에 달한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알려진 가운데 지금까지 다수 아동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27일 감사원 등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태어난 영·유아 가운데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무적자'는 총 2천236명에 달한다.
지역별로 보면 경기가 641명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470명, 인천 157명, 경남 122명 등의 순이다.
감사원이 이들 중 보호자와 연락이 닿지 않거나 한 가정에서 2명 이상의 아기가 출생 신고 되지 않은 사례 등 위험도가 높은 약 1%(23명)를 추려 지방자치단체에 통보, 현장 조사를 통해 안전 여부 확인에 나섰다.
그 결과 첫 현장 조사 사례가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이었다. 이어 경남 창원에서 지난해 태어난 아기가 생후 76일째에 영양 결핍으로 사망한 사건도 드러났다.
불과 1% 표본 조사에 끔찍한 영아살해 및 방임·유기 등의 사건이 드러나자 전수 조사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감사원을 비롯한 정부 부처는 이번에 출생 미신고 사례가 확인된 나머지 2천여 명 모두에 대해 한 달 내에 조사를 완료할 방침이다.
사라진 아이들의 소재 파악 및 안전 확인은 전수 조사 결과를 두고 봐야 알겠지만, 먼저 이들 가운데 다수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양육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국내 대부분의 아기가 들어오는 서울시 관악구 소재 베이비박스의 경우 감사원 감사 기간인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1천418명의 아기가 들어와 보호받고 있다.
이 중 원가정(친부모)에 복귀한 225명 및 입양기관으로 간 148명 등 373명은 상담을 통해 출생 신고가 됐고, 나머지 1천45명은 부모가 출생신고를 원치 않아 주사랑공동체 측이 미아 신고를 한 뒤 관할 구청으로 인계했다.
이 아기들은 보육원과 같은 아동복지시설로 옮겨지거나 입양이 된다. 추후에 법적 후견인에 의해 출생 신고도 이뤄진다.
그러나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의 경우 예방 접종을 위해 부여된 '임시 신생아 번호'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이번 감사에서 드러난 '유령 아동' 2천여명에 포함돼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주사랑공동체의 설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아기는 99% 이상 의료기관에서 출산한다.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아기들 역시 대부분 임시 신생아 번호를 갖고 있는 아기라는 말이 된다.
양승원 주사랑공동체 사무국장은 "지난 8년간 관악구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아기 중 '병원 밖 출산' 사례를 제외하면 대략 900명 정도의 아기가 정부의 이번 전수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경찰과 지자체에서 이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한 공조 요청이 계속 오고 있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며 "다만, 우리 베이비박스가 아닌 제3의 장소에 유기하거나 불법 입양을 보내는 사례 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기를 낳아 직접 키우고 있지만, 가정 내 사정이나 개인사로 인해 미처 출생 신고를 하지 못한 사례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미혼부의 경우 출생 신고 절차가 훨씬 까다로워 제때 등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혼외자 문제 등으로 가정 내에서 출생 신고 책임을 질 주체가 불분명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보육원과 같은 아동복지시설 등 공적 체계 안에 들어와 있으나 여전히 출생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동도 다수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아동·여성 등 인권 단체들의 연대인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가 2021년 4월 2주간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전국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 246곳(전국 251곳의 98%)에 접수된 학대 피해 아동 중 출생 미신고 아동이 178명이었다.
조사 이후 같은 달 말까지 이들 가운데 121명만 출생 신고가 됐다. 57명은 이때까지도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다.
이 단체가 이보다 앞선 같은 해 3월 2주간 같은 방식으로 아동복지시설 63곳(전국 69곳의 91%)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2019년부터 2020년까지 2년간 146명 아동이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실태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아동복지시설 등에서 안전하게 자라고 있는 아동들도 출생 미신고 영·유아, 즉 '유령 아동'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은 "감사원이 확인한 출생 미신고 영유아(2015~2022)가 베이비박스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1천여명에 달한다고 하지만,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의 실태조사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보육원과 같은 아동복지시설 등 공적체계 안에 들어와 있는 경우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설에서 확인된 출생 미신고 영·유아의 경우 부모가 아동학대로 인해 교도소 수감 중이어서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사례도 있고, 혼외 출생으로 인해 자녀의 출생 신고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강 팀장은 "이런 문제 탓에 현재 어른, 즉 부모 중심의 출생 신고 시스템을 아동 중심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s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