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철의 삼각지대' 잣골 전투 생존자, 6.25 한국전서 '가장 값진 승전' 꼽혀

[특별기획 / ‘한국전 숨은영웅’]

벨기에 참전협회장 레이몽 베르씨


올해는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6·25 전쟁 정전협정이 70주년을 맞는 해다. 한국전 당시 미국을 포함해 전세계 22개국 196만명의 젊은이들이 유엔의 깃발아래 참전해 목숨을 바쳐 싸웠다. 이들이 피흘려 싸우며 지켜낸 동맹의 가치와 정신이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룬 토양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특파원들이 각국 참전용사들을 직접 찾아가 생생한 전투 기억과 소회를 들어보고 발전한 한국을 바라보는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연합뉴스의 기획 리포트를 연재한다.


만 19세 때 한국전 참전 지원, 끈질긴 중공군 공격 저항 전공
벨기에도 독일 제국 침략 겪어 전쟁고통 잘 알아 격한 동질감

한국인들과의 우정 가장 큰 소득, 여러차례 방한 인연 이어와
기력 쇠퇴, 한국전 참전 70주년 기념행사 ‘마지막 연설’ 준비

1953년 2월 26일. 통합부대로 편성된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가 미 7연대의 우측 전방 지역인 강원 김화 잣골의 주저항선에 배치됐다.

▶하마터면 ‘잣골’ 적에 내줄뻔

잣골은 중부전선 장악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인 이른바 '철의 삼각지대' 내에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부대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치열한 혈투를 벌이게 될 지 말이다.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는 배치되자마자 같은 해 4월 21일까지 무려 55일 연속 이어진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전공을 세웠다. 한국전쟁 통틀어 값진 승전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당시 전투 생존자인 벨기에 참전용사 레이몽 베르(90) 씨는 하마터면 잣골을 적군에 내줄 뻔했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미군 대령이 우리 부대를 방문하고는 철수를 하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당시 우리 지휘관이 거부했습니다. 벨기에군은 한국인들을 도우러 온 것이지 휴식이나 하러 온 게 아니라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버틸 테니, 탄약과 철조망만 더 보급해달라고 했죠."

베르 씨에 따르면 당시 벨기에 지휘관의 '철수 거부' 소식이 대대 전체로 순식간에 퍼졌다고 한다.

그는 "그 얘기를 들은 병사들 모두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며 "그런 분위기 덕분에 55일간이나 잣골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른채 참전

1933년 벨기에 북동부 림뷔르흐에서 태어난 베르 씨는 16세 때 벨기에 군사학교에 입학하며 군에 합류했다.

병장으로 진급한 만 19세에 한국전쟁 참전을 자원해 1952년 11월 부산에 도착, 정전협정 이후인 1953년 12월까지 한국에 있었다.

그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전혀 몰랐지만, 군사학교에서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며 "벨기에가 독일제국에 당했듯, 우리는 전쟁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변 열강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의 역사를 경험한 유사점 때문인지 벨기에 참전부대에는 늘 각별한 '주의사항'이 내려왔다고 한다.

베르 씨는 "우리가 한국인들의 위에 있거나 그들을 점령하러 가는 게 아니라, 도우러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철저히 교육받았다"며 "현지 민간인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점 역시 주의사항이었다"고 전했다.

"같이 파병된 (벨기에) 군목과 함께 병사들이 먹지 않는 전투식량을 수시로 걷곤 했어요. 그러고는 지프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로 가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에게 나눠준 적도 있어요. 허기진 아이들이 저한테 와서 먹을 것 좀 달라고 손을 어찌나 싹싹 빌던지….“

▶전쟁통 어린이들 떠올리며 눈시울

그는 세 시간가량 이어진 인터뷰 동안 유독 '남한의 민간인과 어린이'에 대해 설명할 때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한국전쟁 참전으로 얻은 것으로 역시 '한국인들과 우정'을 주저 없이 꼽았다. 실제로 당시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에는 다수 한국인도 배속돼 벨기에군으로 참전했다.

벨기에로 복귀한 뒤에는 군을 떠나 다른 진로를 택했지만, 여러 차례 방한하며 연을 이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에도 복잡한 검역 절차를 감수하고 한국을 찾았을 정도다.

그는 "아직도 기억나는 게, 전방을 떠나 서울로 향했을 때 그땐 한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딱 하나 있었다"며 "근데 한국에 다시 갈 때마다 6차선 대교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너무 많아 세는 것을 포기했다"며 웃었다.

베르 씨는 2012년부터 10년 넘게 벨기에 참전협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하지만 빠르게 기력이 쇠퇴하면서 '마지막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내달 27일 현지에서 열릴 예정인 한국전 참전 70주년 기념행사에서다.

그는 "33개월 전에 아내를 사별했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점점 힘에 부친다"며 "전쟁 중 만났던 한국의 민간인에 대한 연설을 준비 중인데, 아마도 이번이 회장으로서 마지막 연설이 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한국에 꼭 다시 가서 한국인 친구들에게 벨기에 초콜릿을 선물하고 싶은데, 주치의가 제 건강 문제로 이번에 갔다간 살아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겁을 주네요. 한국에 가면 꼭 제 전우들에게 안부를 전해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