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황 불리할 때마다 핵무기 사용 가능성 언급

국제비확산체제 현실과 북한 등에 미칠 영향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국가가 실존적인 위협에 처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3월 23일(현지시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전세가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으면서 러시아가 핵무기에 손댈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던 때 러시아 당국자에 의해 핵무기 사용조건이 공식 언급되자 세계가 바짝 긴장했다.

페스코프 대변인 발언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가 가해지자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나 러시아 당국자들이 언급하는 핵무기 사용 조건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국가존립 위협'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말하는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우크라이나 전쟁 직접 개입이나 우크라이나군에 의한 러시아 본토 반격 등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4가지 조건'이 많이 언급된다. 첫번째로는 러시아와 동맹국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 확실해질 경우, 그리고 두번째로 적이 핵무기 및 대량 살상무기를 사용하는 경우, 세번째로 적이 사활을 걸고 중요한 군사시설 등을 침범할 경우, 네번째로 재래식 무기에 의한 공격으로 국가의 존속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등이다.

우크라이나 전황이 불리하게 전개될 때마다 푸틴은 핵무기 사용 위협을 해왔다. 지난해 12월 6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90㎞ 정도 떨어진 러시아 서남부 국경 근처 쿠르스크주 공항 등에 드론 공격이 있은 직후 푸틴은 이 공격을 우크라이나의 소행으로 보고 국가안보위원회를 소집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핵전쟁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그걸 왜 부인하느냐"며 "러시아는 핵무기를 방어 수단이자 잠재적 반격 수단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고 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즉각 러시아 본토 공격을 부인하고 미국도 이를 확인하면서 위기감은 일단 해소됐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는 이어지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최근 발생한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 등으로 푸틴의 정치적 위상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핵무기의 수단화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월 러시아 국빈 방문 당시 푸틴 대통령에게 핵무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내용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 중국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이 즉각 관련 보도에 대한 확인 요청을 받고 "아니다. 확인할 수 없다"고 부인했지만, 러시아에 의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얼마나 민감한 이슈인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 최대의 핵탄두 보유국인 러시아에 의한 핵무기 사용 위협은 갈수록 흔들리는 국제 비확산 체제의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북한 등 다른 핵무장국에 미칠 영향으로 인해 국제외교가가 더욱 긴장하고 있다.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