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망명했다더니 러시아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푸틴이 당장은 안죽일것"…우크라, 내전 가능성까지 관측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김동호 기자 = 지난달 무장반란을 일으켰던 러시아 용병단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에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그의 수수께끼 같은 행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6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프리고진은 더는 벨라루스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프리고진이 이날 오전까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면서 "지금은 아마 모스크바나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설명은 프리고진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합의에 따라 내란 책임을 지지 않는 대신 모스크바 진군을 중단하고 벨라루스로 망명했다던 기존 상황에서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 정보당국도 프리고진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체류했던 것으로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비행 추적 자료에 따르면 그와 연관된 한 개인 전용기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에 들렀다가 러시아 남부로 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단 러시아 당국은 "프리고진을 추적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며 짐짓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러시아를 활보하고 있는 프리고진이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다며 "절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언급했다.

게다가 "푸틴이 악의와 복수심을 품고 내일 프리고진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까지 중요한 측근이던 그가 당장 살해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이 또한 무장반란 당시 프리고진을 반역자로 몰아세우던 푸틴 대통령의 비판과 러시아 관영매체의 선동과는 결이 다르다.

다만 루카셴코 대통령은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며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고 여지를 남겼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벨라루스에 새 둥지를 트는 것으로 전해진 바그너그룹 용병은 결국 푸틴 정권이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바그너 용병이 어디에 배치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들이 벨라루스에 머물지 말지, 머문다면 규모가 어떨지는 조만간 알게 될 것"이라며 "내가 아니라 러시아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현재 새로 군사시설을 짓고 있지는 않으며, 과거 소련 시절 사용되던 군사기지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으나 바그너 측이 이를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바그너는 배치와 관련해 다른 비전을 갖고 있다"고만 덧붙였다.

그는 지난 5일 프리고진과 대화했으며 바그너그룹이 "가능한 한 오랜 기간 러시아에 대한 의무를 계속 이행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의무 이행'이 어떤 것인지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프리고진의 움직임과 바그너그룹 병력의 이동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기자들에게 최근 위성사진에서 벨라루스가 바그너 용병을 수용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지금까지는 다수 용병이 벨라루스로 들어간 동향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프리고진은 지난달 23일 용병단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모스크바 200㎞ 앞까지 진격했다가 벨라루스 망명 등을 조건으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

애초 프리고진은 지난달 27일 벨라루스로 입국했다고 밝혔으며, 루카셴코 대통령도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뒤에 러시아에서 프리고진이 목격됐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 5일 프리고진 소유 차량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가에 정차한 모습 등도 목격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날 소셜미디어에는 프리고진이 수염과 모자 등으로 변장한 듯한 모습의 사진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다. 다만 이는 네티즌이 그를 조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꾸며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더타임스는 설명했다.

쿠데타로 비칠 정도의 위협적인 난을 일으킨 준군사조직 수장이 정부의 제지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점은 비상한 관심을 받는다.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러시아 내에서 프리고진이 푸틴 대통령에 버금가는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을 들어 내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했다.

더타임스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를 떠난 것이 사실이라면, 러시아 땅을 밟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푸틴 대통령에게 모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타임스는 반란을 일으킨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망명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푸틴 대통령의 취약점을 드러낸 셈이 됐다며 "푸틴의 고향이자 러시아의 두 번째 대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회하는 그를 체포할 수 없다는 것은 푸틴이 완전히 통제력을 잃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다만 개인 소유의 거대한 미디어 그룹을 거느리며 대규모 선전전에 능숙한 모습을 보이던 프리고진이 일주일 동안 공개 발언에 나서지 않은 점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더타임스는 이에 대해 "크렘린궁이 그럴 추적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며 "프리고진이 이미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반면 CNN 방송은 지난 5일 프리고진이 러시아 당국에 압수당했던 1억1천만달러(약 1천400억원) 상당의 자산을 돌려받았다는 현지 언론 보도를 가리켜 "수수께끼에 또 다른 층위가 더해진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방송은 "감옥에 가게 될지, 관으로 들어갈지, 프리고진의 앞날은 아직 불확실하다"며 "향후 푸틴이 국내 소란 상황을 가라앉히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고, 막후 싸움이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리라는 점만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d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