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케이드 없애고 제3장소 대기하다 합류…'우크라' 금지어에 '인천'으로 불러

소총 중무장한 현지 경호 인력과 합동 작전…도·감청 방지 위해 통신 교란

尹, '무박 3일 강행군' 수행원에 "옆에서 보니 졸면서 걷고 있더라" 농담도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화살표를 따라가세요"

지난 14일 오후(현지시간) 두 번째 순방국인 폴란드 바르샤바대학에서 행사를 마친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낯선 지령이 떨어졌다.

50m 간격으로 이따금 붙여놓은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 숙소도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대기하라는 지침이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향하는 편도 14시간의 여정은 그처럼 은밀하게 시작됐다고 동행했던 참모들이 19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를 태운 검은색 세단은 당일 오후 5시께 바르샤바 중앙역 근처 호텔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국빈급 방문 기간 내내 뒤따랐던 기나긴 모터케이드 행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일 오전에야 우크라이나 방문 사실을 전해 들은 수행원들은 제3의 장소에서 대기하다 윤 대통령 부부와 합류해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전쟁터에서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배낭을 구해 짊어진 참모도 있었다.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으로 향했다. 기내에서부터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 외에 합동 작전을 위해 중무장한 현지 경호 지원 인력이 동행했다.

기내 방송 마이크를 잡은 1호기 기장은 "목적지로 출발하겠습니다"라고만 알렸다. 착륙해서도 그곳이 어딘지 설명하지 않았다.

대통령 신변 안전을 위해 '우크라이나'라는 말 자체를 입 밖으로 내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한다. 참모들은 대화 중에 우크라이나를 '인천'이라고 불렀다.

기차로 환승하면서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야 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키이우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는 가급적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도 나왔다.

도·감청 방지를 위한 통신 교란 때문인지 휴대전화가 자주 끊겼다. 그렇게 러시아의 드론 공격이 이뤄지는 지역을 통과했다.

공식 일정을 마친 윤 대통령은 15일 저녁 키이우를 출발했다. 기차에 몸을 싣는 순간까지 실탄이 장전된 소총으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윤 대통령 부부를 근접 경호했다.

다시 폴란드로 넘어와 1호기에 탑승한 것은 이튿날 새벽 3시께였다. 거기서 집중호우 대응을 위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화상으로 연결했다.

이어 윤 대통령 일행이 맨 처음 출발한 호텔로 되돌아온 것은 16일 오전 7시가 다 돼서였다.

이동 시간만 갈 때 14시간, 올 때 13시간으로 27시간에 달했다. 11시간 동안 머문 것까지 합하면 38시간 동안의 강행군이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그로부터 1시간 30분 뒤에 프레스센터를 찾아 "가는 길이 험난했다. 이번이 아니면 갈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한 수행원에게 "옆에서 보니 졸면서 걷고 있더라"라고 농담을 건넸을 만큼 고단한 무박 3일의 일정이었다고 참모들은 전했다.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