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교사들, 심리적 고통 호소…"불안감에 섭식장애 겪기도"

교원단체 "악성민원에 무방비 노출…민원시스템 마련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1. A 교사는 점심시간에 행정업무를 보던 중 반 학생 두 명이 싸움을 벌였고,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며 학부모로부터 '아동유기방임'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했다.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지만, 몇 달간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A 교사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과 정신적 충격을 감당해야 했다.

#2. 경기 지역의 B 교사는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한 학생이 상대 후보가 자신의 공약을 표절했다는 항의를 받고 조사에 나섰다가 표절 사실이 없자 항의한 학생에게 "근거도 없이 그런 주장을 하면 안 된다"며 훈계했다. 이후 학부모는 B 교사의 훈계라 아이가 심리적으로 힘들어한다며 B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B 교사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3. 인천의 한 유치원에서는 수업 중 친구들과 놀던 C 군이 얼굴 부위를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C 군의 부모는 담임교사에게 직접 사과와 치료비 배상을 요구했다. 담임교사의 사과에도 C 군의 부모는 유치원을 찾아가거나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협박성 발언을 이어가다가 담임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담임교사는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경찰·검찰 수사를 받고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지만, 섭식장애와 불안 증세로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지난 18일 오전 학교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관련해 교육계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동기라는 소문이 확산해 경찰이 조사 나섰다.

아직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교육계 내부에서는 학부모 악성민원에 교사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원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학부모의 민원으로 지난해 7월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당했던 전북지역 D 교사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교단에 설 자신이 없다"면서 "어렵게 학교로 돌아왔지만, 아이들 간에 갈등이 생기면 자리를 피하거나 잠시 혼자 있는 공간을 찾아 마음을 진정시킨 뒤 다시 교실로 돌아간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D 교사는 "교사 경력이 18년인데도 당시를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심리 치료까지 받았다"면서 "이번에 논란이 되는 사건의 교사가 신임 교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초임 교사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학부모의 악성민원에 시달린 교사들은 무혐의 처분을 받더라도 심리적 고통에 시달린다고 호소했다.

정재석 전북교사노조 위원장은 "매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고, 해가 갈수록 빈도도 늘고 있다"면서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는 기간 교사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심리적 불안감은 전적으로 교사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무분별한 피소로 인한 교사들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현재처럼 학부모가 교육현장에 무작정 찾아와 항의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서면 항의 또는 교장·교감 입회 의무화 등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계에서는 학부모의 악성민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교원의 아동복지법 위반 사항을 조사는 교육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지자체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전담한다.

교원단체들은 아동복지법 위반 조사 초기부터 교육현장 이해도가 높은 교육청 소속 공무원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또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의 교권침해 유형에 '무고죄'를 삽입해 무분별한 고소에서 교사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손민정 강원교사노조 위원장은 "많은 선생님이 어제 사건을 접하고 밤새 실의에 빠졌다. 정도의 차이지 다들 비슷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버티고 있을 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학교 관리자인 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오히려 뒷짐 지고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갈 곳도, 기댈 곳도 없는 교사들이 일선에서 모든 스트레스를 견디라고 내몰리는 꼴"이라고 말했다.

송욱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북지부장은 "다른 공공기관은 민원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지만, 학교는 1대 1로 민원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악성민원에 취약하다"며 "학교 차원에서 민원 창구를 만들어 운용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 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양지웅 최종호 김상연 전지혜 김근주 김진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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