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지식 뽐내며 허위 자문비 수억원씩 빚 지워

때리다 지친 가해자, 피해자들 불러내 상호폭행 강요

(여수=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법률가라 믿었던 거짓말쟁이로부터 일상의 고충을 상담받은 청년들은 수억원대의 자문비를 빚졌다.

가짜 법률가가 부담 지운 거액의 빚 때문에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를 당한 이들은 차 안에 갇혀서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서로를 폭행하는 기이한 상황까지 내몰렸다.

28일 전남 여수경찰서에 따르면 올해 7월 29일 오후 11시 40분께 여수시 자동차전용도로 졸음쉼터의 차 안에서 숨진 A(31)씨와 그를 사망에 이르도록 때린 B씨(30)의 악연은 각각 알고 지내던 C(31)씨에게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시작됐다.

C씨는 오랜 기간 지인들에게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행세를 해왔다.

경찰 조사 결과 C씨는 한때 법률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관련 분야에서 일한 경험은 없는 무직자였다.

A씨와 B씨는 저마다 3∼4년 전 민사소송 등 사적인 분쟁에 휘말리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C씨를 찾아가 법률 상담을 받았다.

법률에 해박한 지식을 뽐낸 화법에 현혹당한 이들은 변호사 선임이나 소송 등으로 각각 수억원의 비용이 발생했다는 C씨의 거짓말에 속았다.

C씨는 이 돈을 갚으라며 A씨와 B씨를 때리기 시작했다.

돈을 빼앗지 못한 C씨가 수년간 지속한 폭행은 고문 수준으로 심각해졌다.

거짓말과 학대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피해자들은 동갑내기 친구 또는 한 살 터울 선배였던 C씨에게 심리적인 지배까지 당하게 됐다.

피해자들을 때리다 지친 C씨는 이들을 한 장소로 불러내 서로를 둔기 등으로 폭행하도록 강요까지 했다.

A씨와 B씨가 무더운 날씨에 씻거나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한 달가량 비좁은 차 안에서 지내며 서로를 폭행한 비상식적인 범행의 발단이 됐다.

사건 초기 관련인 진술 등에 일절 등장하지 않았던 C씨의 존재는 A씨와 B씨가 끼니는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물음표를 던진 경찰의 보강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식사 시간대 정기적으로 사건 현장을 오간 C씨는 영상통화로 차 안의 상황을 지켜보며 A씨와 B씨가 서로를 폭행하도록 지시한 이번 사건의 진범으로 확인됐다.

숨진 A씨, 그를 때려죽였다고 경찰에 신고한 B씨 모두 심각한 피부 괴사 상태에 빠져있었는데 C씨의 강요에 의해 지독한 폭행을 멈추지 못하고 이어갔다.

B씨는 사건 초기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 게임머니 때문에 A씨와 갈등을 겪었고, 상대방이 잠들면 돌로 허벅지를 찍어서 깨우는 '끝장토론'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진술은 C씨가 범행 발각에 대비해 미리 짜 맞춰놓았던 허위 진술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가스라이팅 사건을 결과만 놓고 이해하려고 들면 안 된다"며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을 공개할 수 없지만, 평범한 청년들이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지게 됐는지 끔찍한 전말이 방대한 수사 기록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C씨를 살인 및 중감금치상 혐의로 구속해 지난 25일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 초기 상해치사 혐의로 입건된 B씨는 여전히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실질적으로 피해자인 B씨의 신병 처리 방향은 남은 수사를 통해 정할 방침이다.

h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