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들 "빵도 없고 야채도 없다…당국서 아무 지원 못받아" 분통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강타한 120년 만의 강진 피해 수습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태어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기마저도 길가 텐트에서 삶을 시작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출산을 위해 고향에서 65km나 떨어진 모로코 중부 도시 마라케시의 병원에 입원했던 하디자는 지난 8일 밤 지진이 발생하기 불과 몇 분 전에 딸아이를 낳았다.

강진에도 산모와 아기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지만 병원은 여진 우려 때문에 문을 닫아야 했다.

하디자는 출산 후 3시간 만에 간단한 검진만을 받고 퇴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녀는 이튿날 이른 아침 갓난아기를 안고 남편과 함께 아틀라스 산맥에 있는 고향 마을 타다르트로 가려고 택시를 잡았다.

하지만 가는 길에 산사태로 길이 막혀 마라케시에서 약 50km 떨어진 아스니 마을까지 밖에 갈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결국 하디자 가족은 아스니의 큰 길가에 간신히 텐트를 마련하고 그 안에서 지내고 있다.

하디자는 "당국으로부터 어떤 도움이나 지원도 받지 못했다. 덮을 것이 없어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담요를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고 당국의 느린 구호에 불만을 터트렸다.

하디자는 고향 친구들로부터 자신의 집이 크게 부서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면서 "언제나 살 곳을 마련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아스니 마을과 인근 지역엔 여전히 구호 물품이 거의 전달되지 않아 주민들의 좌절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BBC 방송은 전했다.

주민들은 현장 취재에 나선 자국 취재진을 둘러싸고 불만을 표출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군중 속의 한 남성은 "우리에겐 음식이 없다. 빵도 없고 야채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면서 "아무도 우리에게 오지 않았고 오직 신만이 있다"고 절규했다.

지진 이후 네 자녀와 함께 마을 도로변에서 지내고 있다는 이 남성은 "우리 집은 무너지진 않았지만 벽이 심하게 갈라져 무서워서 그 안에서 살 수가 없다"면서 "집에서 간신히 담요 몇 장을 가져와 그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힘든 생활을 토로했다.

근처 텐트에 사는 또 다른 피난민 므바르카는 취재진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자기 집으로 데려가 보여주며 "집을 다시 지을 방법이 없다. 현재 우리를 돕는 사람은 지역 주민들뿐"이라고 하소연했다.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