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부차적 존재' 취급받았다 이제야 깨달아"

고질적 남성우월주의 문화 뒤엎을 촉매로 사태 주목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시상식에서 선수에게 기습적으로 입을 맞춘 스페인축구협회 회장이 사퇴한 가운데 이번 사건이 스페인 '마초 문화'를 바꾸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BBC 방송 등에 따르면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장은 이날 성명에서 사직서를 냈다면서 유럽축구연맹(UEFA) 부회장 자리에서도 물러난다고 밝혔다.

루비알레스 회장은 지난달 20일 스페인 우승으로 끝난 여자 월드컵 시상식에서 스페인 선수 헤니페르 에르모소에게 입맞춤했다.

그는 '에르모소의 동의를 얻은 행위였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논란이 불거진 지 약 3주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스페인 스포츠계에서 이 같은 마초 문화는 고질적 문제였다고 BBC는 전했다.

예컨대 최근에서야 경질된 호르헤 빌다 스페인 대표팀 감독은 이전부터 강압적 지도 방식으로 선수들 반발을 샀다. 또 선수들은 3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 대회에 참가하는 동안 자정 전까지는 호텔 객실 문을 잠글 수 없었다고 한다.

스페인 축구 저널리스트 기옘 발라게는 스페인 언론과 사회가 그간 이런 사안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서 "(스페인은) 이제야 (스포츠계에) 여성을 부차적 존재로 취급하는 조직적 분위기가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발라게는 "월드컵이 (변화의) 촉매제가 될 거라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일들이 놀랍다고 평가했다.

실제 스페인 검찰은 루비알레스의 행위가 성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기초 사실관계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욜란다 디아스 부총리 겸 노동부 장관은 스포츠계에 만연했던 남성 우월주의가 루비알레스의 행위를 통해 최악의 형태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스페인 여성들은 지난달 말 마드리드 시내에서 가두시위에 나서 여성 인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흐름을 보면 루비알레스 사건이 스페인 축구는 물론 사회 전반에 필요했던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발라게는 내다봤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사회정치적 쓰나미였다"고 평가했다.

스페인 여자 축구 리그 기획·전략 담당 페드로 말라비아는 "이는 우리가 원하는 축구는 어떤 축구인지, 누가 회장을 선출하는지, 스포츠에서 여성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라면서 "적절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hanj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