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릴스 지옥' 숏폼 중독 심각…"앱 지워도 봤지만 번번이 실패"

'팝콘 브레인' 우려…"빅테크 사업모델 자체가 중독 이끌어" 주장도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직장인 김모(28)씨는 매일 밤 잠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인스타그램 앱을 켜는 게 루틴이 됐다.

친구들이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24시간 뒤 사라지는 게시물)를 전부 확인하고 하단 돋보기 버튼을 눌러 검색 탭을 열면 클릭을 기다리는 게시물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재용 시점으로 본 대한민국 물가', '탕후루를 첨 먹어본 40대 배우가 한 말', '이번 추석에 꼭 먹어야 하는 음식', '케이크 이렇게 자르면 무조건 손해', '요즘 뜬다는 40대 여성 와인설', '용돈 주고 싶어지는 누나네 강아지 복장', '배달 초밥 시킬 때 걸러야 하는 메뉴',…

봐도 그만이고 안 봐도 그만인 게시물들이 상당수고 길어야 1분도 안 되는 영상이 대부분이지만 별생각 없이 눌러봤다가 수십∼수백개씩 보기 일쑤다.

김씨는 "자기 전에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을) 보게 되는데 피식거리며 스크롤을 넘기다 보면 1시간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며 "시간도 아깝고 결국에는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 같은 젊은 층만 그런 것은 아니다. 60대 직장인 이모씨도 평일 오전 6시 기상과 함께 아이패드를 집어 들고 유튜브 앱에 들어간다.

굵은 글씨로 시선을 잡아끄는 섬네일이 그의 검지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다.

'호주의 95%는 왜 비어있을까?', '중년 아재들 다른 운동 말고 이것만 하세요. 온몸의 건강이 좋아집니다', '한국인 80%가 모르고 있는 가성비 직구 제품 추천 BEST10', '꼭 봐야 할 놀라운 금속 가공 과정'…

이씨는 밤에는 일정 시간 뒤 모든 앱이 종료되도록 설정해 둔다. 주로 유튜브를 켜놓고 영상을 보다 잠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유튜브를 켜면 평소 자주 보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영상이 자동으로 나오니 아무 생각 없이 눌러 보게 된다"며 "유용한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말을 그냥 흘러나오게 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 중독이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에 이르렀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스스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다시 앱을 열고 '무한 스크롤'의 굴레에 갇히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년 사이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등 몇십 초∼몇분 분량의 영상 콘텐츠(숏폼)가 크게 늘면서 말 그대로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손가락만 옆으로 또는 위로 휙휙 넘기면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영상을 홀린 듯 시청하는 이런 모습을 일러 '쇼츠 지옥', '릴스 지옥'이란 말도 나올 정도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후회하면서 앱을 아예 지워버리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그때뿐이다.

송모(29)씨는 소셜미디어 중독을 경고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경각심을 느껴 아예 인스타그램 앱을 스마트폰에서 지워버리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송씨는 "퇴근 뒤 하염없이 동물, 옷, 각종 춤 챌린지가 담긴 릴스랑 쇼츠만 보는데 본 걸 보고 또 보기도 한다"며 "앱을 지웠더니 웹페이지로 들어가서 보다가는 곧 다시 깔았다. 지금도 주기적으로 앱 삭제와 다운로드를 반복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거의 중독 수준에 이른 소셜미디어 사용이 주의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뇌 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뇌가 현실에 둔감해지고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본인이 보고 싶은 걸 선택해서 보는 게 아니라 눈에 들어오는 자극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고위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을 사용하지 않게 된다. 안 쓰면 그 기능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단순히 개개인에 자제를 요구하는 것으로는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이 이용자들을 소셜미디어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알고리즘과 사용자환경(UI) 등을 변경하고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소셜미디어를 과도하게 이용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내용으로 올해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 '도둑맞은 집중력'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저자 요한 하리는 빅테크 기업의 사업 모델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지적한다.

이 교수는 "중독성이 증명돼야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생기는데 (빅테크 기업들이) 중독 가능성을 숨기고 그 기준조차도 아직은 모호한 상태"라며 "소셜미디어 중독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미디어 산업의 사회적 책임과 정책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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