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총격·굶주림 계속 떠올라"…"탈출 과정서 정부 지원 부족"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그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었다. 폭사 당하거나 굶어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스라엘이 집중 공세를 가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탈출한 외국인들이 전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인 나세르 하미드 사이드(52)는 지난달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난 5주 동안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에 갇혀 있다가 이달 12일 가까스로 본국으로 돌아왔다.

가자지구에 머무르던 외국 국적자 수백 명은 이달 초부터 이집트 라파 국경 검문소를 통해 이곳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이드와 가족도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8세, 12세 두 아들을 비롯한 가족 모두 무사히 귀국했지만 사이드는 끔찍했던 현장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전쟁터로 내몰리는 꿈에 시달리는 건 물론 가자지구 탈출 도중 이스라엘군 총격을 받았던 상황이 수시로 떠오른다고 사이드는 말했다.

앞서 그는 아들 등 가족을 태운 차를 몰고 가자지구를 탈출하려고 했는데, 이때 이스라엘군이 그의 차량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결국 사이드는 가족을 데리고 최소한의 식수만 든 채 라파 국경까지 걸어서 가자지구를 빠져나가야 했다. 당시 그는 이스라엘군이 또 총을 쏠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고 털어놨다. 혹시 모를 총격에 대비해 사이드가 앞서 걷고 나머지 가족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사이드는 "떠나야만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서 "영국 대사관을 비롯해 우리를 도와줄 곳이 아무도 없었다. 폭탄에 의해 죽지 않으면 굶주림으로 죽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아들들에게 손을 높여 흰 천을 든 채 이동하자고 말해줬다"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재 사이드의 두 아들은 폭죽 소리에 겁을 먹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가족도 사방에서 가해지는 이스라엘군 폭격과 부족한 식량, 더러운 물, 끊겨버린 전기에 시달렸던 지난 5주를 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이드는 "영국 정부가 이 전쟁을 멈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 모두를 위해 전쟁이 끝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부 외국인은 가자지구 탈출 과정에서 자국 정부가 국민을 충분히 지원해주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트린다.

영국인 법률 컨설턴트 파라스 아부와르다는 개전 이전 가자지구를 찾았다가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그곳에 갇힌 가족을 빼내기 위해 이집트를 두 번이나 방문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영국 정부 관계자에게 불친절한 대우를 받은 건 물론 가자지구에서 겨우 탈출한 가족이 같은 호텔 방에 머무르지도 못했다고 아부와르다는 말했다.

그의 가족은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부와르다는 "우리는 연대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했고 (정부 측은) 가족을 전혀 돌봐주지 않았다"면서 "가자지구 내 영국 시민을 대하는 정부 태도에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hanj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