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 45% 무너져…병원·수도·위생시설도 파괴

재건 주체도 불확실…"복구에 수십 년 걸릴 것"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24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의 휴전에 들어갔으나, 48일간의 전쟁으로 이미 폐허가 된 고향 마을을 바라보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심경은 참담하기만 하다.

23일 AP통신에 따르면 휴전을 앞두고 가자 주민들은 전쟁이 끝나더라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걱정과 슬픔에 잠겨있다.

약 230만명이 살고 있던 가자지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라고 불리는 이번 이스라엘군의 공습과 지상 공격으로 폐허로 변했다.

최근 위성 사진을 보면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집중된 가자 북부 지역의 건물들은 절반가량 훼손되거나 무너졌다.

남부까지 포함하면 주택 4만1천채 이상이 사람이 살기 힘든 수준으로 무너졌으며 이는 가자지구 전체 주거지의 45%에 달한다고 유엔(UN)은 밝혔다.

유엔 추산 170만명이 전쟁 기간 집을 잃고 노숙인 신세로 전락한 상황에서 가자지구가 예전으로 돌아가는데 최소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택 외에도 병원부터 빵집, 제분소, 농업 및 수도·위생 시설 등 생존에 필수적인 기반 시설들이 모두 망가진 상태다.

이미 2014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으로 큰 피해를 봤던 가자는 50억 달러(약 6조5천억원)를 들여 진행 중이던 복구 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포화에 휩싸이게 됐다.

팔레스타인 권리 단체 알 메잔 소속 기우리아 마리니는 "이번에 벌어진 피해의 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더 높다"며 "가자가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의 피란민들은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무너져 내린 고향의 현실을 떠올리면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북부 자발리야 난민 캠프에서 남부로 피란을 온 노르웨이 난민위원회(NRC) 소속 유세프 하마시는 AP에 "잔해 위에서 잠을 자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자시티를 떠나 지난주 이집트로 피란 온 알-아자르 대학 정치학자 맥하이머 아부사다는 "가자 북부는 거대한 유령 도시로 변했다"며 "사람들이 돌아갈 곳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재건을 맡을 주체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은 최근 바레인에서 열린 안보 정상회의에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남기고 간 엉망인 상황을 가서 치워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후에도 가자지구를 계속 통제하길 원하지만, 미국은 요르단강 서안에 집권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통치권을 갖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은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이스라엘의 노력이 부재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특히 이번 휴전이 나흘간의 일시 교전 중지에 불과한 만큼 가자 북부 주민 대부분은 아직 고향에 돌아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칸 유니스로 피란을 온 가자시티 주민 만수르 쇼만은 전날 미국 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고향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지금의 협상 조건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휴전 후 이스라엘의 공격이 더 거세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NBC는 전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직후 팔레스타인 70만명이 고향에서 쫓겨난 '나크바'(대재앙)와 같은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자시티 출신의 하자지는 AP에 "우린 절대 다시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며 "이곳에 머무는 이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wisefo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