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시연 태도·태양 방위각까지 따져…"꾸며내진 않은 듯"

이재명 경선 사용 가능성도 언급…"정치자금 필요했던 시점"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권희원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6억7천만원 금품 수수를 인정한 재판부는 다양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따져 핵심 증거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진술이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상황에서 재판부는 유씨가 김씨에게 돈을 줄 당시 '모기에 많이 물렸다'고 묘사한 것을 두고 "감각적 경험에 대해 세밀하게 진술했다"고 평가하며 유죄의 증거로 채택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김씨가 받은 정치자금이 이 대표의 대선경선 자금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를 종합하면 이번 판결은 향후 이 대표의 재판과 수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 1차 불법 정치자금 '사파리 시연'…"꾸며내지 않은 듯"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전날 김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해 법정구속한 판결에서 유씨의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한 이유를 상세히 판시했다.

재판부는 유씨의 개별 진술에 대해 합리성·객관적 타당성·전후 일관성, 여타 증거들과 주요 부분이 합치되는지 등을 봐 구체적·개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해 판단했다.

여기에 남욱·정민용 씨의 진술,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 내용 등과의 일치 여부도 신빙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았다.

재판부는 먼저 유씨가 처음으로 대선 경선자금을 전달한 2021년 5월3일 오후 6시께 1억원을 넘겨준 상황을 법정에서 어색하지 않게 시연한 점을 언급했다.

유씨는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가 1억원이 든 쇼핑백을 외투 안에 넣어 옆구리에 낀 채로 숨겨서 나갔던 모습을 재연했는데, 재판부는 "임의로 동작을 꾸며낸 듯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김씨가 남색 사파리 외투를 입고 유원홀딩스 사무실을 방문한 것을 목격했다는 정씨의 진술과도 일치한다.

김씨 측은 남색 사파리가 5월에 입기에 적절하지 않은 옷차림이라고 반박했으나, 재판부는 비교적 낮았던 기온 등을 고려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씨는 수수 시점에 건물 안으로 햇볕이 강하게 비췄다고 진술했는데, 이 역시 사무실 형태와 위치, 태양의 방위각을 볼 때 인정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판 중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장 이모씨가 이른바 '거짓 알리바이'를 제출한 정황도 김씨 측의 주장을 배척하는 사유로 언급했다.

◇ "모기 물렸다", "통화 듣고 칼국수 먹었다" 신빙성 높인 진술들

재판부는 2차로 경선자금 3억원이 전달된 2021년 6월 8일 직전에 김씨가 '돈을 빨리 마련해 달라'고 독촉 전화를 했다는 유씨의 증언도 남씨의 진술과 일치한다고 봤다.

유씨는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남씨·정씨와 함께 있을 때 김씨가 전화를 걸어와 스피커폰으로 통화한 내용을 함께 들었다고 말했는데, 남씨 역시 이를 기억하며 '통화를 함께 들은 뒤 칼국수를 먹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는 것이다.

또 유씨가 정씨로부터 받은 5억원 중 3억원만 김씨에게 전달하고, 2억원은 자신이 보관하다가 일부를 개인적으로 썼다고 진술한 것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김씨에게 불리한 허위 사실을 진술하고자 했다면 착복 사실을 숨겼어야 함에도 그대로 자인했다"고 판단했다.

2021년 6월 하순에서 7월 초순께 유씨가 김씨에게 2억원을 전달하며 '모기에 많이 물렸다'고 생생히 진술한 부분도 신빙성을 인정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유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법정에서 "경기도청 북측 도로 근처 벤치에 앉아서 김씨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반바지를 입고 있어 다리에 모기를 많이 물렸다"고 떠올렸다.

◇ '이재명 경선준비 비용' 가능성 시사…6억원 용처 들여다보나

재판부는 김씨의 유리한 양형 사유를 밝히며 "수수한 정치자금은 (이 대표의) 경선준비 등 공적 정치활동을 위한 비용으로 일정액이 소비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대표를 위해 사용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범행 시기가 대선 경선 조직 구성과 준비 등을 위해 정치자금의 필요가 있었던 시점으로 판단된다"며 "예비경선 후보자 등록일 이전부터 경선 준비를 위한 사무실을 운영해왔던 만큼 월세와 유지 비용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경선 비용을 자원봉사와 갹출로 해결했다는 김씨 측 주장에는 "경선 대비 문건과 준비 규모에 비춰볼 때 그렇게 해결될 수 있는 정도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발적 지출이 있었다면 구체적 분담내역에 대한 자료가 다소 확인돼야 하지만 비용 결제 내역 등 객관적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김씨가 돈을 요구하며 '광주 등 남부지방을 도는데 너무 힘들다. 돈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유씨의 진술이 돈을 마련한 남씨, 정씨의 진술과도 일치한다며 사실에 부합한다고 봤다.

남씨 역시 '이재명이 경선에서 이기려면 지역별로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김씨가 조직부장 역할을 하고 있어 20억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고, 정씨도 선거자금으로 20억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불법 정치자금 6억원의 구체적 용처와 이 대표의 인지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 착수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vs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