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성난 사람들' 에미상 8관왕 주역 이성진 감독

봉준호·박찬욱 감독 활약에 정체성 자신감
미국 이름 '소니 리' 버리고 본명 사용 결심 
"LA올때 통장잔고 -63센트…성공 안믿겨져"

"미국 이름 말고 이성진이라는 한국 이름에 자부심을 느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미상 8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의 각본을 쓰고 연출, 제작까지 맡은 이성진 감독(43)은 “미국인들이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부를 때는 조금이라도 더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영화 ‘기생충’(2019년)으로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쥔 봉 감독의 활약을 계기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9개월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 3∼5학년을 보낸 뒤 다시 미국으로 갔다. 
미국인들은 ‘이성진(Lee Sung Jin)’이라는 한국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이에 그는 숙제를 낼 때 ‘소니 리(Sonny Lee)’라는 영어 이름을 썼다.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과를 2003년 졸업하고, 2008년 미국 월트디즈니 계열 케이블 채널 FXX 드라마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에 각본가로 참여할 때도 영어 이름을 사용했다.

하지만 2019년 ‘투카 앤드 버티’ 각본을 쓰면서부터 한국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이날 에미상 시상식에서 먼저 작가상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이 감독은 "처음 LA에 왔을 때 돈이 없어서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 63센트였다"며 "그걸 메꾸러 가서 '1달러를 저금하겠다'고 하니까 '정말 1달러 저금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땐 그 무엇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고, 제가 이런 것(트로피)을 들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주연 ‘대니 조’로 열연한 스티븐 연(연상엽·41)도 한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 1.5세다. 2016년 결혼한 그의 아내 조아나 박(박은경) 역시 한국계 미국인이다. 
또 극 중 대니의 동생인 ‘폴 조’ 역의 영 마지노, 대니의 사촌형 ‘아이작 조’ 역의 데이빗 최도 한국계다.

조연인 에드윈(저스틴 민), 베로니카(앨리사 김), 나오미(애슐리 박)외에 극 중 일본계 ‘조지 나카이’를 연기한 조셉 리도 2018년 KBS 2TV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에 출연한 한국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