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주 하원의원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안 발의…근무시간 외 업무 관련 전화·이메일 금지

[뉴스포커스]

팬데믹 재택근무 이후 일·가정 경계 모호...퇴근 후·주말 개인 시간 방해받지 말아야
미국선 처음 …워싱턴주, 뉴욕도 논의 중...상공회의소·고용주 반대 입장 통과 불투명

#LA한인타운 내 직장에서 근무하는 50대 이모씨는 퇴근 후 평일 저녁은 물론 주말에도 회사로부터 업무 연락을 종종 받는다. 중소 규모 비즈니스에서 영업 총괄을 맡고 있는 업무 특성상 크든 작든 문제가 생기면 그에게 연락을 하고 한인타운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손이 필요하면 주말에도 잠시나마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워낙 애사심이 강한 이씨는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있지만 가끔은 짜증이 치솟아 휴대폰에 뜬 회사 번호를 못본 채 무시하기도 한다.하지만 마음은 영 편치 않다.

가주에서 근무시간 외 회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를 무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disconnnect)'법안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맷 헤이니 주 하원의원(민주당)이 최근 발의했다.
헤이니 하원의원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일과 가정 사이 경계가 모호해졌고 특히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를 하면서 이런 추세가 더 많아진 경향이 있다"면서 "근무시간 이후에는 전화나 문자메세지를 받지 않고, 개인 시간이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무 시간 외 전화나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이뤄지는 업무를 흔히 '그림자 노동'이라고 하는데 매년 평균 6주를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라는 통계도 있다.

법안(AB2751)에 따르면, 가주 노동청은 이를 상습적으로 위반하는 고용주를 조사해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안은 2017년 프랑스에서 처음 도입된 이래 2020년 캐나다가 뒤를 이었고 지난 2월 호주에서도 법안이 통과됐다. 이외에 아르헨티나, 벨기에, 아일랜드 등 세계 13개국에서 법안이 마련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법안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캐나다는 만약 고용주가 상호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시간에 연락을 하면 직원은 답할 의무가 없고 연락에 응하면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호주도 고용주는 매우 긴급한 일이 아닌 이상 근무 시간 외 연락을 해서는 안되며 연락하면 근로자는 공정근로위원회에 신고할 수 있고 고용주는 벌금을 물게 된다. 

국가들 만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도입한 기업들도 있다. 독일의 자동차기업 폭스바겐은 노사협약을 통해 2012년부터 업무시간 이후 아예 회사 이메일이나 메신저 기능을 사용할 수 없도록 기술적으로 막았다.

미국에서는 가주에서 처음 발의됐지만 워싱턴주와 뉴욕시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논의 중에 있다.
그러나 가주 상공회의소를 포함해 고용주들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전망은 불투명하다.
가주 상공회의소는 "다양한 산업과 직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가주에서는 근무시간 외 업무에 대해 오버타임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는데 외려 근로자들이 오버타임을 못받게 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복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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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직장인 10명 중 6명이 퇴근 후 업무 연락을 받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 직장인 1천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60.5%가 휴일을 포함해 퇴근 이후 직장에서 전화, SNS 등을 통해 업무 연락을 받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