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인권 운동가 스테이시 박 밀번씨 25센트 짜리 쿼터 동전 오늘 출시, 내일부터 미 전국 유통
[뉴스포커스]
최다 7억개 발행, 향후 50년 이상 사용
주한미군 父·한국인 母, 근육질환 장애
10대부터 인권운동, 정책 확대 큰 기여
2020년 지병 신장암으로 33세에 별세
미국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25센트 동전(쿼터)이 시중에 풀린다. 수퍼마켓·패스트푸드점·지하철역 등 미 전국 곳곳에서 쓰이게 된다. 앞면에는 늘 그랬듯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얼굴 측면이 새겨져있고 LIBERTY(자유)와 미국의 공식 슬로건인 ‘IN GOD WE TRUST’가 새겨졌다. 그런데 뒷면에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단발머리 여성의 모습이 새겨져있다. 그 옆에 DISABILITY JUSTICE(장애인의 정의)’라는 문구와 함께 ‘STACEY PARK MILBERN’이라는 이름이 쓰여있다. 스테이시 박 밀번, 한국 이름으로 박지혜. 지난 2020년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장애인 인권운동가인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으론 사상 최초로 미국 화폐의 주인공이 됐다.
8일 연방 조폐국은 스테이시 박 밀번(1987~2020·한국 이름 박지혜) 쿼터(25센트) 동전 유통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오늘(11일) 각 은행으로 배송되고 다음날인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중에 뿌려진다.
조폐국은 ‘아메리칸 위민쿼터스 프로그램'으로 밀번의 삶과 유산을 기념하는 동전을 주조했다. 미국 정부는 참정권, 시민권, 노예제 폐지,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 사회의 발전에 공헌한 여성들을 기리기 위해 2022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20명의 여성을 쿼터 뒷면에 등장시키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밀번은 19번째 헌정 대상자가 됐다. 밀번의 동전은 최소 3억개, 많을 경우 7억개까지 발행할 예정이다. 앞으로 최소 50년 동안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에 밀번의 얼굴이 자리할 수 있는 셈이다.
밀번은 1987년 주한 미군이었던 아버지 조엘 밀번과 한국인 어머니의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퇴행성 근육 질환을 앓은 그는 장애인으로서 겪은 불편함과 부당함, 개선점 등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 글들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청소년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주목받았다.
2007년 스무살 밀번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정부가 공립 고교 교육과정에 장애인 역사를 포함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는 메소디스트 대학과 밀스칼리지를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장애인·유색 인종·성 소수자 등을 위한 인권 운동에 힘썼고, 그 덕에 2014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지적장애인을 위한 정책 자문 위원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밀번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사회적 약자들에게 마스크 등 긴급 의약품·위생용품을 전달하는 데 앞장서다 앓고 있던 신장암 등이 악화했다. 그는 결국 33번째 생일인 그해 5월 19일 사망했다.
동전에는 밀번이 전동휠체어에 앉아 청중에게 연설하는 모습이 담겼다.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밀번이 왼손을 목 근처 가슴에 얹고 오른손은 무언가를 설명하는 듯이 앞으로 뻗고 있다. 밀번은 기관절개술을 받고 튜브 고정장치를 목에 끼고 활동했는데 동전에는 그런 모습도 담겨 있다. 조폐국은 이 디자인이 “진정성 있는 생각의 교환과 연대의 구축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13일 동전 발행 축하 행사
동전 2천개 팔각쟁반 담아
13일 워싱턴 DC 국립 미국사 박물관의 워너 브러더스 극장에서는 새 쿼터의 주인공 밀번의 삶을 기리고 동전 발행을 축하하는 연방 조폐국의 축하 행사가 열린다. 행사장에는 한복을 입은 무용수들의 부채춤 공연이 열린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반짝이는 새 동전 2000개를 쏟아붓는데 한국식 팔각쟁반에 담게 된다. 미국인이면서 한국인이었던 밀번의 삶을 기리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