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패닉에 빠져…'젤렌스키 백악관 굴욕' 재연 차단 부심"
러에 유리한 종전, 나토 집단방위 체제 신뢰 흔들 가능성 우려도
트럼프·젤렌스키 양자회담 후 유럽 정상들 합류해 '담판'
18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물론 유럽의 주요 정상이 몰려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설득에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렇게 유럽 정상들이 대거 백악관에 나타나는 건 아주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 측의 협상안을 수용하라고 강도 높게 압박하면서 대서양동맹의 근간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마저 흔들 수 있다는 우려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유럽의 한 고위 외교관은 18일 회의를 두고, 이라크 전쟁 직전 이후 가장 빠르게 소집된 회의라고 이 매체에 말했다.
통상 정상회의는 일정 조율에만 장시간이 걸리는데, 미국·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핀란드에 더해 유럽연합(EU)·나토 수장까지 한자리에 모이는 회동이 불과 이틀 안팎 만에 조율된 점에 주목한 언급이다.
그러면서 이 외교관은 지난 2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겪은 '굴욕'을 언급했다.
지난 2월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을 찾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자신의 종전안 수용을 압박하면서 거칠게 면박을 주고 사실상 그를 백악관에서 쫓아낸 바 있다.
유럽은 우크라이나의 굴복으로 종결되는 전쟁은 러시아의 호전성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같은 형태의 종전은 침략에 대한 처벌 대신 '선물'을 주는 꼴이어서, 향후 주변국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동기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게 유럽 측의 인식이다.
이 외교관은 유럽 동맹국들이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며 유럽의 가장 큰 관심사는 지난 2월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TV 카메라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과 같은 장면을 피하는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나아가 유럽은 러시아 측에 유리하게 매듭짓는 전쟁은 미국과 유럽이 구축한 오랜 신뢰를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유럽과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49년 나토를 창설했다.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집단방위' 약속 위에 군사동맹을 맺은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러시아의 요구 조건이 대거 수용된다면, 유럽으로선 나토 체제의 지속성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유럽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 뒤 나토에 대한 그의 불만을 차단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유럽의 국방비 증액을 약속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협상 국면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탈선'을 막기 위해 전방위 교섭을 폈다.
이번 미러 정상회담 직전에도 화상 정상회의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휴전' 추진을 설득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가 요구한 영토 이양 등을 골자로 한 '종전'에 무게를 실으면서, 이들의 설득 노력이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셈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 기디언 라크먼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이 집결하는 백악관을 '사자굴'에 비유하며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가 푸틴이 마련한 위험한 길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NYT는 "이번 협상이 나토 동맹의 결속력을 시험할 것이란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푸틴의 의제는 우크라이나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점령하는 것보다 더 크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의 가장 큰 야망은 나토를 분리해 유럽 동맹국들을 미국에서 떼어놓는 것"이라며 "우리의 동맹이 위험한 순간에 처해 있다"는 전 미 해군 제독 제임스 스타브리디스의 평가를 전했다.
미국 의회매체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 기준 18일 오후 1시께부터 백악관 집무실에서 양자 회담을 한다. 이 자리에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배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2시 15분께 백악관 국빈만찬장에서 유럽 정상들과 인사를 나눈 뒤 기념 사진을 촬영할 예정이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유럽 정상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오후 3시께부터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다.
이 자리에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hrseo@yna.co.kr